날씨타령

손가락 2008/08/13 23:55
 아, 요즘 정말 덥다. 말하는 것도 짜증이 날 정도로 날씨는 덥고 게다가 한국의 여름은 진정으로 습해서 아주 힘들다. 그나마 실내에서 에어컨 바람을 맞고 있기야 하다만 컨디션도 난조를 보인다. 게다가 텔레비전에서는 그 놈의 올림픽 때문에 매일 보던 드라마도 못 보고 있다. 제발 방송 3사에서 같은 것 좀 틀지 말란말이다!

여간. 어제 느릿느릿하게 진행되던 MWG Market Power 부분을 다 보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Market Power는 시장에 진입한 monopolist의 수와도 관계가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 시장에 monopolist들의 진입을 허용할 만큼 충분한 먹을거리가 있는가(즉, monopolist가 setup cost를 감수할 만큼의 이윤을 거둘수 있는 시장의 크기가 형성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그리고 그러한 설정 하에서 monopolist들의 진입에 따라 market power가 분산되며 competitive한 상태의 가격으로 생산물의 가격이 하락할 수 있다는 것이 대강의 요지이다.

여간 내용을 보고 연습문제를 푸는데 어째 잘 안풀리고해서 풀다말다 빈둥대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내용을 말할 수 없는 기밀업무 수행으로 (뭐, 알고 있을 사람 들은 알겠지만 그 망할 놈의 기밀업무 덕분에) 공부하는 도중에 족족 시간 외 근무를 하느라 이것저것 제대로 할 수 있는 상태도 아니고. 기타도 사실 못 친지가 거진 3주가 다 되어간다. 손에서 슬슬 굳을 살이 빠지는 중인데, 어째 칠 엄두도 시간도 나지가 않는다.

계량을 보다가 결국 다시 ODE부분과 Linear Algebra를 다시 개괄하고 있다. SVD도 제대로 생각 안나고 eigenvalue의 성질도 가물가물해서 결국 처음부터 다시 볼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어찌보면 예견된 비극의 시작이었다고나 할까. 덕분에 영어공부는 거의 손을 놓고 있다. Writing도 귀차니즘으로 연습을 거의 안하고 있다.

쓰다보니 최근 생활이 엉망이 된 것처럼 느껴지는데 맞다, 최근 생활 완전히 망가진 거. 사실 다른사람들은 바쁘게 사는지 모르겠는데 난 매년 여름에는 아무것도 안하고 논다. 겨울에는 공부도 하고 좀 바쁘게 사는데 여름에는 정말 아무 것도 안하고 선풍기 앞에서 책읽고 컴퓨터 게임하면서 논다. 그러던 사람이 갑작스레 일과 공부를 하려니 잘 될리가 없지. 게다가 업무 스트레스(?)로 컨디션까지 난조이니 할 말 다했지. 아. 원.

그러고보니 알던 사람들이 다들 (대부분) 미국으로 가는 것 같다. 이제 내가 아는 남은 사람들은 몇 없다. 정말, 손에 꼽을 정도만 남은 것 같다. 어느새인가 내가 공부를 하러 미국에 간다는 걸 당연하게 생각한지가 오래되었는데 가는 사람들을 보면 아직도 많은 의문이 든다. 내가 과연 공부할 만한 자격을 지녔을까라는. 사실 난 아는 게 아무 것도 없다.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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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호와 밥그릇

손가락 2008/08/06 17:27
정치도 경제도 정상인 상황이 아닌 가운데 날씨는 점점 더워진다. 몸과 마음이 점점 지쳐가는 가운데 뉴스를 틀자하니 정치인들의 밥그릇 싸움이 여전하다. 왜 한국에서는 말도 안되는 정치인들의 밥그릇 싸움을 국민들이 구경해주어야만 할까? 밥그릇 싸움이 없는 곳이야 없지만 한국 정치인들의 밥그릇 싸움은 밥그릇을 갖느냐 못 갖느냐의 원초적인 생계의 문제라기 보다는 누가 밥그릇에 얹힌 비싼 반찬을 집어 먹을 것인가 하는 기만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다. 문제는 그런 반찬은 그들의 노동이나 희생의 대가가 아닌 부당한 정치적 독점에서 나오는 국민들의 잉여에 대한 착취에서 오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국민들 대다수는 밥그릇에 밥은 커녕 보리도 못 채워 먹을 정도로 힘든 보릿고개를 견뎌내고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한편 뉴스가 끝나고 어제도 여느때와 다름없이 텔레비전 드라마를 시청하였다. 전설의 고향을 보았는데 역시나 단골 래퍼토리인 '구미호'편을 방영하기에 별 생각없이 보았다. 그런데 그 구미호가 말하는 레토릭이 조금 전에 뉴스를 보면서 고민한 그러한 문제가 무엇에서 기인한 것인지를 던져주기에 한마디 보태지 않을 수 없었다.

이야기의 전체적인 설정은 구미호의 저주를 받은 가문이 이로 인한 멸문지화를 막기위해 초경이 시작된 집안의 여식들을 죽여 구미호의 발현을 막는다는 것이고 그 가문의 종손이 그러한 비극을 막고자 하였으나 실패하고 그 와중에서 발현된 구미호가 집안을 풍비박산 낼 위기에 처하나 종손 덕택(?)에 그러한 변고는 막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종손도 20년 뒤에는 같은 행위를 반복하고 있다는 그러한 반전으로 극이 마무리된다.

종손은 초중반에는 그러한 만행에 대하여 천문학의 발달로 일월성신의 움직임까지도 예측하는 마당에 그러한 미신은 믿을 수 없다고 말하며, 그러한 의식에서 희생되는 가족들의 인명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한 종손의 발언에는 인간에 대한 존귀함과 연민이 있다. 그러나 종손이 구미호의 처단을 통해 얻어진 구미호의 간과 피 등의 부속물(?)이 인간의 건강함과 장수를 누리게 한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집안의 (죽은 것으로 된) 노인들이 집안 사당에 몰래 숨어 살면서 그러한 부속물의 섭취를 통해 비정상적인 장수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20년 후에는 그러한 행위의 중심를 역시 반복하고 있다는 것은 한국 정치의 역사의식의 부족을 대변하는 듯하다. 시청 후에 오늘날의 정치 상황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겹쳐졌다.

즉, 시대의 발달에 뒤떨어지는 구태적 정치의식에 대해 격렬히 다음 세대의 중심세력이 저항하며 그러한 저항에 대한 정당성을 대가로 그들 자신이 중심세력이 되는데 성공하지만 그 자신도 과거의 구태적 행위를 통해 자신의 이익을 보전하려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자신은 자신의 이익을 보전하기 위해 역시나 과거의 중심세력이 그랬던 것처럼 이전 세대에 대한 숭배와 비밀화를 계속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이익의 보전은 집단 내부의 약자들의 일방적 희생을 대가로 유지되고 있으며 이러한 희생은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라는 형태로 계속 정당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는 어디에서 끊을 수 있을까? 그것은 다름 아닌 집단 내부의 문제제기를 통한 부당한 약탈을 근절하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극 중 대사에서도 나왔지만, 구미호의 저주는 집안 사람들이 구미호로 변한다는 불확실한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러한 미신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데에서 오는 집안 사람들의 이유없는 희생인 것이다. 그리고 정작 발현된 구미호 자체는 자신을 해치려 한 부당함에 기인하여 폭력을 행사한 것이다. 만약 그러한 행위가 없었다면 구미호의 발현이 반드시 가족들을 해치는 행위가 되었을까? 그것은 집권 세력이 만들어낸 허구적 신화이며 그러한 허구적 신화에 대한 맹목적 종용이 그들 자신을 파국으로 이끄는 자기실현적 예언이 된 것 뿐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허구적 신화에 대한 이의제기를 막지 않고 그러한 신화가 형성된 원인을 고민하여 부당한 희생을 막을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해결책이라 본다. 물론 극중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러한 희생이 집안의 부귀영화를 보전시켜준다는 식으로 성장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21세기에 이르러 문명화의 시대에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사회의 성장은 구미호 미신과 같은 허구적 행위에 의하여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노력과 준비에 의해서 시작되고 유지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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