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음악을 좋아한다고? /2005.2.15

손가락 2006/04/04 06:21
내가 음악을 좋아한다고?

착각들 하지 마시오소서.

내가 음악 이야기를 많이 한다고 해서 아무도 나에게 그 사실을 묻지 않고 내가 음악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없지 않은가?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생각해보라.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운동량 X 위치>= H' 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당신은 나에 대한 어떤 사실을 확신할 수 없다. 아인슈타인은 이런 확률적 세계관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비단 양자역학의 세계만이 아니다. 당신은 사회관계, 혹은 인간관계라고 하는 것들도 이러한 현상의 중첩으로 이루어진 세계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당신이 '잘 알고'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에 대한 사실도, 실은 그 사람에 대한 중첩된 정보를 통한 추론에서 나오는 것이다. 당신이 그 사람에 대한 모든 정보를 그에게 물어 가지고있는 것만은 아니지 않은가? 당신이 그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그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 뿐일지도 모른다. 여기서 객관적이라 함은 굳이 표현하자면 비수의적 관계에 놓인 정보를 말하는 것으로서 예를 들자면 그의 가족 수, 그의 연령 등과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다. 수의적 정보에 대해서는 그 자신도 파악할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의 성향은 충분히 변화할 수 있는 것이다. 아니, 확실한 정보를 가졌다고 주장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하이델베르크 공식(위에서 언급한)의 후단(부등호 너머)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H라는 (상?)수는 어떠한 상태에 놓여있는 자세한 정보의 정도를 일컫는 것이다. 즉, 인간에 대한 정보의 확실함은 어느 정도 이하로 확실해질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하는 게다.

그러나 인간은 그러한 상수의 크기를 종종 무시하고 자신에 대한 혹은 타인에 대한 확신을 전제한체 타인에 대해 반응하고 타인과 소통한다. 그러기에 타인의 '이상반응'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그와의 관계에서 트러블을 만드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타인에 대한 이해도에 대한 상수(귀찮다. H라고 한다)를 전제하고 관계를 전제해 나갈 때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진다는 사실을 주지하자. H가 작아질 수 있는 한계를 인식할 때에 H가 오히려 커진다는 모순된 전제에 봉착하는 것이 신기하지 않은가? 그것이 바로 인간의 미스터리이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렇기에 나는 인간에 대한 연구에 있어 정태적 연구와 동태적 연구만으로는 파악될 수 없는 그 무엇을 발견하고자 하는 것이다.
2006/04/04 06:21 2006/04/04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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