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6'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08/06/30 슬퍼지려 하기 전에 (4)
  2. 2008/06/26 Study of thesis
  3. 2008/06/18 자유주의, 경제학 (1)
  4. 2008/06/09 무의미한 것들 (4)
  5. 2008/06/07 Sola Fide (2)
  6. 2008/06/06 Utopia

슬퍼지려 하기 전에

손가락 2008/06/30 23:03
 어떻게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과 그것이 논리적으로 옳은가의 연관성의 문제는 언뜻보면 당연한 것 같이 보이지만 실은 어떤 관계도 없다. 전자는 당위적인 옳음의 문제이며 후자는 주장이 뒷받침 되고 있는 지식 체계 전체의 구성에 관한 문제이다. 당위적인 옳음의 문제는 논리적인 순서에 의해 도출되는 공식theorem이라기 보다는 그것이 있다라고 생각하는 공리axiom의 문제이다. 즉, 옳고 그름의 문제는 그것이 주장되어지는 지식 체계 전체에서 결론적으로 도달될 수 있는 것인가의 문제보다는 그것이 기존의 지식체계가 전제하고 있는 다른 종류의 옳음에 대한 주장들과 충돌하는가의 문제에 더 중점을 기울여 검토되어야 한다. 즉, consistency의 문제가 우선하는 것이다.

한국사회가 전제하는 옳고 그름의 문제는 무엇이 있을까? 많은 다른 나라에서 그것들은 헌법의 형태로 선포되어 국가(정부, 혹은 정체政體)의 정체성을 대내외적으로 규정한다. 한국(적어도 남한)정부는 그것을 '민주공화'라는 이름으로 규정했다. 그것은 곧 국민들이 자신들의 뜻에 따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할 자유가 있다는 것이며 이를 대의적인 형태의 위임을 통해 공적인 형태로 책임지우고자 한다는 것으로 보는 것은 잘못된 해석인가? 이는 한국정부의 헌법의 가장 전면에 있는 선언이며, 이것은 그 어떤 다른 논리성에 구애받지 않는 독립적인 공리로서 우선하는 것이다. 만약 그러한 공리에서 도출된 공식이 공리와 배치된다면 그것은 공식이 잘못 도출된 데에서 나오는 문제이지 공리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한 옳고 그름을 문제삼기 위해서는 다른 공리들과의 충돌의 문제를 살펴야하지 공리과 공식간의 서열을 논할 것은 아니다.

국민에게 헌법으로 보장된 언론 집회의 자유를 향유하고 대의적 형태로 맡겨진 그들의 권력을 회수하고자 하는 것은 국민에게 당연하게 보장된 권리이다. 이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고자 한다면 내세워야 할 것은 그에 상응하는 다른 옳음들일 것이다. 과연 그들은 그러한 옳음의 문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가? 높은 학력을 보유하고는 아직도 그러한 서열의 문제를 혼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심지어는 국민이 그러한 서열의 문제에서 무엇이 우선하는지도 모를 만큼 무지하다고 생각하고 그들의 착각이 먹혀들어가기를 바라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그만두었으면 한다. 대한민국의 도덕교육에 대해 슬퍼지려 하기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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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y of thesis

Ceteris Paribus? 2008/06/26 14:31
생각해보면 경제학을 공부하기 시작한지도 어느덧 4년이 넘어간다. 우연한 계기로 시작한 경제학을 전공으로 삼겠다고 생각하기까지 몇가지 우연들과 감사한 분들의 호의와 더 이상 좋을 수 없었던 조건의 영향이 있었다. 그리고 군복무를 하면서 과거에 했던 공부들을 정리하고 있는 지금에 와서는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무엇이 한 걸음을 나아가게 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다. 그러면서 내가 지난 시간동안 좌시했던 문제들에 왜 그렇게 선현들이 매달려왔는지에 대한 깨달음을 조금씩 얻어가고 있다. 역시 공부도 짬이 차고 볼 일이다.

최근에 가장 신경을 쓰고 있는 문제는 사회적인 합의와 최선의 문제이다. 사실 이미 60~70년대를 거치면서 소위말하는 일반균형이론으로 정리가 되긴 하였지만 그 배후에는 (1년 반 쯤 전의 포스팅에서 말했지만) 정치적인 합의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즉, 경제학이 기본적으로는 정치경제학이라는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았음을 시사하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최근의 게임이론이나 메카니즘 디자인의 문제에서도 중요한 것은 과연 무엇이 인간을 평등하게 대우하는 기준이 될 것이며 사회적인 정의와 공동선의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합의를 체계적으로 나타내는 문제이다. 과거에는 (물론 지금도 헤메지 않는 건 아니지만) 수학적인 엄밀성과 직관적인 공식의 도출에 눈을 기울였다면 지금은 그것들이 나타내는 결과를 이미 알고있기에 거기에서 출발해 가정된 체계가 무엇을 나타내는 가에 대한 문제를 바라보려 노력한다. 자유 민주주의에서 자유주의가 말하는 '좋음에 우선한 옳음'이라는 것이 어떠한 형태로 경제학적 탐구에 반영이 되었는가의 문제도 그러한 문제의 하나이며 최근의 흐름이 반영하는 진화적 형태의 동학 또한 그러한 문제의식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무엇이 극도로 다원화되고 분화된 개인들의 기준을 반영할 수 있는 원칙이 될 것인가, 혹은 그러한 개인들을 어떻게 하면 가장 평등하다고 느낄 만하게 대우해 줄 것인가의 문제를 한정된 자원의 틀에서 논의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중요한 것은 사회가 반영하고 있는 전통과 문화의 파악이다. 일전에 김영세 교수님이 수업시간에도 말씀하셨듯 경제학자가 한낱 기술자로 남아서는 안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가 밟고 있는 땅이 어떤 땅인지, 누구의 땅인지를 항상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결국에는 철학의 문제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게 결국인지 아닌지는 더 두고봐야 할 일이지만. 결국 무엇이 옳은가, 좋은가, 옳고 좋음의 기준은 무엇인가, 옳고 좋음의 기준은 어디에서 오는가의 문제들이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시작할 때 그것으로 시작하였고 그것들을 잊고 있었고, 엉뚱한 길로 온 것이 아닌가 고민했는데 결국은 그 길로 오고 있었다. Don't Be Myopic, boy.  

아. 그리고 위의 그림은 Simpsonize Me 한 그림이랍디다. 비슷한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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