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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1/22 Consumer theory를 위한 변명?
  2. 2011/11/03 국치를 기억하다

Consumer theory를 위한 변명?

Ceteris Paribus 2011/11/22 12:25
 Dilbert.com

글쓴이의 전공에도 불구하고 경제에 대한 글이 최근 몇 년 사이에 눈을 씻고 찾아 볼래도 찾을 수 없었던 이 공간. 굳이 변명을 하자면 뭘 모르던 소시적에는 아는 게 하나만 생겨도 신나게 글을 올려제끼고 본인의 무지를 방패(?)삼아 글이 내포한 심각한 위험성을 그냥 넘어가곤 했는데, 이젠 좀 더 아는게 생기니까 쉽게 어떤 상황에 대한 주장을 하지 못하게 되었더라 정도로 변명할 수 있겠다. 어쨌든, 간만에 본인의 전공에 대한 재미없는 이야기를 또 해보려고 한다

일반적으로 consumer theory라고 한다면 많은 대학생(들과 고등학생들이) 경제 교과서를 펴면 등장하는 수요-공급의 관계를 규명하는 이론이다. 일반적으로 보았을 때, 가장 전형적인 경제학의 영역을 다루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본인이 학부생때 지도교수께서 경제학은 수요-공급으로 시작해서 수요-공급으로 끝난다고 하셨는데, 어찌보면 간단해 보이는 이 관계 안에 상당히 다양하고 복잡한 주제들을 담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교수님의 말씀에 부분적인 동의를 보내본다. 사실 수요-공급이라는 것은 소비자가 생각하는 적정 가격과 그에 따른 개인의 수요, 그리고 이를 전체적으로 총합(aggregation)한 총수요를 예측하고, 공급자도 비슷한 형태로 총공급을 예측하여 그 접점에서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는 시장청산(market clearing)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는 각 소비자와 공급자가 서로에 대한 완전한 정보를 가지고 있고, 이를 토대로 서로의 수요와 공급을 예측하여 적정 가격을 제시하는 일종의 경매상황과도 유사한 상황이 동반되는데, 이러한 부분은 학부생 및 고시생들이 배우는 기초 경제학 시간에는 거의 생략된 부분이다. 즉, 기본적으로 소비자와 공급자가 동등한 정보와 위치를 가지는 상황을 가정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는 불완전하고 비대칭적인 정보 - 소비자는 공급자의 생산비용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고, 공급자는 소비자의 수요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며 - 에서 비롯한 비대칭적인 상황 - 공급자가 (대체적으로) 우월한 상황에서 시장 가격을 결정한다 - 을 우리가 바라보고 있기에, 이러한 밑도 끝도 없이 생략된 가정에서 비롯한 이론이 많은 경제학 입문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경제학 입문자들이 아담 스미스부터 시작하는 것은 아니니)

게다가 한국의 상황은 미국의 상황보다 더욱 비대칭적인 상황인데, 이는 핸드폰 시장 하나만을 봐도 알 수 있다. 단적인 예로 애플의 아이폰을 볼 수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듯이 애플의 가장 큰 장점은 fancy한 디자인도 아니요, 하이엔드급의 기기 성능도 아닌, 소비자가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마치 잘 작동하는 것 같이 소비자에게 보여주는 소프트웨어의 부드러움에 있다. (software니까 soft하지. 이건 무슨 말장난인가 싶다.) 말하자면 소비자가 원하는 수요를 정확히 예측하고, 그에 대한 willingness to pay를 예측한 가격 산정을 통해 시장에서의 위치를 점한다. 그리고 제품군의 다양성을 최소화해서 제품군의 가격차별화를 확실하게 하고. 물론 독점적 지위와 관련해서 말이 많기는 하다만, 일단 그런 것은 제쳐두고서 볼때 경제학에서 보는 공급자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런데 한국 기업인 삼성은 일단 생산자 위주(만)의 생산을 한다. 즉, 하드웨어의 성능향상과 (상당한 부분이 인건비 착취에서 비롯되는) 비용 최소화가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아니, 소비자가 컨수머 리포트 필진도 아니고 cpu성능의 차이를 얼마나 체감하겠냐고. 오히려 하이엔드 부품 달아놓고 무겁고 비싼데다가 소프트웨어 이식이 낮아서 기기성능의 반도 제대로 체현하지 못하고 버벅거리는 삼성 핸드폰보다는 실제 성능이 느리던 빠르던 더 부드럽게 움직여주는 애플 아이폰이 더 '빠른 것처럼' 느껴진다는 거지. 그걸 캐치하지 못하고 광고 내내 애플보다 기기성능 상으로는 훨씬 좋다고 선전해봐야 그게 얼마나 먹히겠냐는 거다. 생산자가 해야하는 역할 중에 소비자의 수요를 정확하게 예측해야 하는 역할이 동반되야 시장 청산과 균형가격이 나타나는데, 그걸 못하니 계속 과공급이 생기고, 그런 과공급을 인건비 및 요소가격(하도급 부품가격) 착취로 메꾸려고 하는 상황이니 이건 뭐 멍청한 상사 덕에 부하들만 쥐어 터지는 꼴이라.

이건 뭐, 한국기업과 미국기업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문제를 이야기하려는 것 보다는, 기초적인 이론이 얼마나 강력하고 정확한 실제 경제의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는지를 말해주는 예시인거라. 말하자면 이 글은 많은 경제학에 입문하는 초년병들이 기초이론을 등한시하고 간단하게 설정된 ceteris paribus라는 '가정' 안에서의 문제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에 이런 저런 상황 설명을 해주려고 쓴 일종의 변호문인 셈이다.
2011/11/22 12:25 2011/11/22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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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치를 기억하다

손가락 2011/11/03 11:41
 한미FTA라는 것이 그동안 상당히 두루뭉술하게 설명이 되어왔다. 본질적인 잘못은 노무현 정부가 상황을 정확하게 인지하지 않은 채로 진행을 시킨 데에서 시작하겠지만, 더 큰 잘못은 현 정부가 (노무현 정부당시에도 논쟁 중이던) FTA의 몇몇 독소조항을 미국의 요구대로 그대로 받아들이고 치적용 성과를 위해 빠른 비준을 국회에 요구하면서 시작되었다고 본다. 이는 어떤 면에서 현 정부의 소위 말하는 자원외교와 맥락을 같이하는 대표적인 망국의 시책 중에 하나인데, 자원외교가 단순히 세금을 해외에 헛뿌리는 단순한 '남 좋은일'의 분류에 속한다면, 이는 단순한 남 좋은 일을 뛰어넘어 내가 '피 보는' 정책에 속한다면 면에서 망국의 치세로는 더 높은 순위에 속한다고 하겠다. (사족을 덧붙이자면 망국의 치세의 최고봉은 누가 뭐래도 4대강이요.)

 이야기가 잠시 산으로 가고 있는데 한미FTA는 지금의 상태로 체결된다면 심각한 무역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 그리고 한미FTA가 미국 정부 내에서는 연방 권고수준으로 취급되는 반면 (미국은 각 주 정부가 대부분의 주 행정에 대한 집행권을 가진다. 연방 법원 및 군사(안보)동원에 관한 특수사항이 아닌 이상 연방 정부가 주정부의 행정권한을 침범할 수 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한국에 대해서는 강제성을 동원하는 사항이 많기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형평성을 조절하지 않는 한 SOFA협정 이후 최악의 협정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 이는 단순히 경제적으로 높은 비교우위에 의한 이득을 취할 수 있는가 수준의 문제가 아닌, 국내 정책에 대한 자주성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즉, 미국이 한국 정부의 국내 정책에 대하여 FTA를 빌미로 간섭권을 사실상 갖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이다. 게다가 최혜국 대우라는, 고등학교 국사에서 강화도 조약에서 왜 강화도 조약이 불평등 조약인가를 설명할 때 맨 첫 단락에 나오는 사항을 버젓이 위치시키고는 불평등 조약이 아니라며 눈가리고 아웅하는 것은 도대체 대학 진학률이 세계 최고 수준인 국민 대다수를 상식 이하의 인간으로 취급하는 것인지. 이젠 FTA 체결하겠다고 국사교과서까지 수정하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이 상황의 국회 비준을 앞두고 국회에서의 행태는 상당히 지리멸렬을 넘어서 분노를 동반하게 한다. 먼저 집권여당은 대다수가 골수까지 친미인 자들이므로 할 말이 없다지만 본인들이 한국에서 기득권을 가지고 살고 싶다면 본인들의 기득권에 대한 '자주와 독립'마저 포기하고 싶은 자들은 기꺼이 그리하도록. 야권 제1당은 무리짓기도 못하고 타이밍을 잡는 것도 최악이지만, 이번에도 날치기를 당한다면 (뭐, 집권여당이 국회비준을 원한다면 100%겠지) 다음 선거에 대한 가망인 접는 게 좋을 지도 모르겠다. 이번에 무려 기호 10번인 무소속 후보가 당선되는 것을 보고 당신들은 뭘 느낀게 없나? 기호 2번의 힘이 사실은 별거 아니라고. 1번도 씹어먹어 버렸는데 2번은 멀쩡할 줄 아나? 어디서 깃발부대 코스프레질인지. 국민들에게 제1 야당으로 인정을 받고 싶다면 국회의사당 회의장 문에 철심을 박아서라도 막아야 할 것이다.

 미국에서 생활하고 미국에서 공부하는 나 조차도 가족과 고향을 등지고 살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비록 내가 여기서 직장을 다니고 대부분의 삶을 여기에서 보낼 것이라는 것도 예상할 수 있지만, 사람의 인지상정이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왜, 그 땅에서 사는 사람들은 그런 것을 잊고 사는 걸까? 자신들이 갖고 있는 '자주와 독립' - 비록 불완전 할지라도 - 이 소중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  
2011/11/03 11:41 2011/11/03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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