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에 해당되는 글 137건

  1. 2011/11/03 국치를 기억하다
  2. 2011/10/27 조심스러운 짐작
  3. 2011/10/22 Beyond the tide.
  4. 2011/09/14 에, 그러니까
  5. 2011/07/17 답과 질문
  6. 2011/06/21 첨언
  7. 2010/12/23 확성기
  8. 2010/09/20 싼 거, 비싼 거
  9. 2010/01/15 안되겠니?
  10. 2009/05/20 김씨전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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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치를 기억하다

손가락 2011/11/03 11:41
 한미FTA라는 것이 그동안 상당히 두루뭉술하게 설명이 되어왔다. 본질적인 잘못은 노무현 정부가 상황을 정확하게 인지하지 않은 채로 진행을 시킨 데에서 시작하겠지만, 더 큰 잘못은 현 정부가 (노무현 정부당시에도 논쟁 중이던) FTA의 몇몇 독소조항을 미국의 요구대로 그대로 받아들이고 치적용 성과를 위해 빠른 비준을 국회에 요구하면서 시작되었다고 본다. 이는 어떤 면에서 현 정부의 소위 말하는 자원외교와 맥락을 같이하는 대표적인 망국의 시책 중에 하나인데, 자원외교가 단순히 세금을 해외에 헛뿌리는 단순한 '남 좋은일'의 분류에 속한다면, 이는 단순한 남 좋은 일을 뛰어넘어 내가 '피 보는' 정책에 속한다면 면에서 망국의 치세로는 더 높은 순위에 속한다고 하겠다. (사족을 덧붙이자면 망국의 치세의 최고봉은 누가 뭐래도 4대강이요.)

 이야기가 잠시 산으로 가고 있는데 한미FTA는 지금의 상태로 체결된다면 심각한 무역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 그리고 한미FTA가 미국 정부 내에서는 연방 권고수준으로 취급되는 반면 (미국은 각 주 정부가 대부분의 주 행정에 대한 집행권을 가진다. 연방 법원 및 군사(안보)동원에 관한 특수사항이 아닌 이상 연방 정부가 주정부의 행정권한을 침범할 수 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한국에 대해서는 강제성을 동원하는 사항이 많기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형평성을 조절하지 않는 한 SOFA협정 이후 최악의 협정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 이는 단순히 경제적으로 높은 비교우위에 의한 이득을 취할 수 있는가 수준의 문제가 아닌, 국내 정책에 대한 자주성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즉, 미국이 한국 정부의 국내 정책에 대하여 FTA를 빌미로 간섭권을 사실상 갖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이다. 게다가 최혜국 대우라는, 고등학교 국사에서 강화도 조약에서 왜 강화도 조약이 불평등 조약인가를 설명할 때 맨 첫 단락에 나오는 사항을 버젓이 위치시키고는 불평등 조약이 아니라며 눈가리고 아웅하는 것은 도대체 대학 진학률이 세계 최고 수준인 국민 대다수를 상식 이하의 인간으로 취급하는 것인지. 이젠 FTA 체결하겠다고 국사교과서까지 수정하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이 상황의 국회 비준을 앞두고 국회에서의 행태는 상당히 지리멸렬을 넘어서 분노를 동반하게 한다. 먼저 집권여당은 대다수가 골수까지 친미인 자들이므로 할 말이 없다지만 본인들이 한국에서 기득권을 가지고 살고 싶다면 본인들의 기득권에 대한 '자주와 독립'마저 포기하고 싶은 자들은 기꺼이 그리하도록. 야권 제1당은 무리짓기도 못하고 타이밍을 잡는 것도 최악이지만, 이번에도 날치기를 당한다면 (뭐, 집권여당이 국회비준을 원한다면 100%겠지) 다음 선거에 대한 가망인 접는 게 좋을 지도 모르겠다. 이번에 무려 기호 10번인 무소속 후보가 당선되는 것을 보고 당신들은 뭘 느낀게 없나? 기호 2번의 힘이 사실은 별거 아니라고. 1번도 씹어먹어 버렸는데 2번은 멀쩡할 줄 아나? 어디서 깃발부대 코스프레질인지. 국민들에게 제1 야당으로 인정을 받고 싶다면 국회의사당 회의장 문에 철심을 박아서라도 막아야 할 것이다.

 미국에서 생활하고 미국에서 공부하는 나 조차도 가족과 고향을 등지고 살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비록 내가 여기서 직장을 다니고 대부분의 삶을 여기에서 보낼 것이라는 것도 예상할 수 있지만, 사람의 인지상정이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왜, 그 땅에서 사는 사람들은 그런 것을 잊고 사는 걸까? 자신들이 갖고 있는 '자주와 독립' - 비록 불완전 할지라도 - 이 소중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  
2011/11/03 11:41 2011/11/03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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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스러운 짐작

손가락 2011/10/27 10:30
 이번 보궐선거를 보고 짐작해보건데 현임 대통령은 고도의 임기 후 보신정책을 쓰고 있는 듯 하다. 일단 최근에 눈에 보이는 여러가지 행태들이 곧 임기를 마칠 대통령의 일반적인 행태라고 보여지지 않을 정도로 반 여당적이다. 심지어는 대통령이 여당의 대권 유지를 바라지 않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잠깐, 대통령이 현 여당의 대권 유지를 바라지 않는다고? 그것 참 말 되는 일이 아닌가?

 어떤 맥락에서 그런 짐작이 가능한지 짚어보자. 많은 이들이 짐작하는 바와 마찬가지로 대통령의 성향은 극도의 보신주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듯 하다. 그렇기때문에 여당과 야당이라는 틀로 이루어진, 일반적인 자기 세력에 대한 동조의식이나 동료애가 없을 수 있다. 즉, 자기 자신의 보신과 관련해서 여당과 야당의 구분이 전혀 없다고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보신의 의미에서 누가 자신의 보신에 더 나은 세력일지를 생각해보자. 일단 여당이 집권할 경우 현재로서 가장 가능성이 높은 후보는 자신에게 매우 혹독한 처벌을 내릴 수 있다. 뭐,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일단은 자신들이 전임 대통령과 얽혀있다는 오해(?)를 풀고, 꼬리를 밟힐만한 물적, 인적 증거들을 말소하겠다는 의도가 클테니까. 그리고 내부사정을 더 잘 아는 만큼 티 나지 않으면서도 치명적인 처벌이 가능할 것이고. 명분상 일단 여당 내에서 후발 집권세력이 같은 여당의 전임 집권세력을 처벌하는 경우이므로 같은 여당 내에서 처벌을 반대하기가 어렵다. 또한 같은 여당 내에서의 처벌이므로 '역사와 정의'를 바로잡는다는 매우 훌륭한 명분을 내세울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야당 또한 그러한 혹독한 처벌에 대해 가타부타 할만한 여지가 없다. 오히려 (멍청하게) 박수를 치면서 좋아하면 좋아했지.

 그런데 야당이 대권을 잡는다고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일단 처벌이 들어올 경우 여당 내부에서 임기 후의 보복성 처벌이라는 형태로 야당의 처벌에 대해 반발하는 목소리를 낼 수 있다. (말하자면 실드를 쳐 줄거란 거지) 게다가 여당 내부에 얽히고 섥힌 인사들도 대통령의 처벌과 관련에 연쇄적으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자신들에게도 피해가 올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그 처벌의 강도를 약화시킬 것이라는 말이지.

 이런 두 가지의 가능한 처벌의 시나리오를 생각해본다면 여당에서 집권을 하는 것보다는 야당에 권력을 넘겨주는 것이 본인에게 닥칠 처벌의 강도를 놓고 생각해 볼 때 더 나은 선택일 수 있다. 그렇기때문에 오히려 현 여당이 다음 대선에서 대권을 잡지 못하도록 반 여당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본인이 현재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가 아닐까 생각해보는데. 이게 사실이라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보신의 수준을 넘어선, 초인적인 형태의 개인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발상이다. 그렇다면 조금 재미있는 다음 이야기를 생각해봐야지.

 어차피 이 상태에서 대권을 넘겨받는다면 일단 현재 집권 여당에 대한 처벌은 국민 정서와 더불어 상당한 명분을 얻게된다. 물론 대통령에 대한 처벌도 어느 정도는 가능하겠지. 나라면, 내가 집권을 한다면 이런 정서를 이용해 그동안 여당이 자신들의 권력유지를 하는데 필요했던 여러 도구들(사법기관장 임면 및 대검 중수부 이용, 국가보안법 등)을 철저하게 도려내겠다. 물론 야당이 쓸 수 없다는 생각도 들겠지. 하지만 본인들이 여태까지 때리는 쪽보다는 맞는 쪽에 더 가까웠다는 점에서 쓸만한 (그리고 상당히 잔인한) 몽둥이를 하나 없애버리는 게 장기적으로는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사회정의의 구현이라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고. 그리고 부동산 및 금융관계 호적정리를 좀 해야겠지. 그 동안 집권 여당의 마르지 않는 샘이던 차명 부동산과 불법 대출을 깨끗이 정리해주는 것 역시 수순이지. 먼저 사법부 독립이 된다면 두 번째 과업은 자연스럽게 흘러가리라 본다. 뭐, 이런 것들이 정상적인 시나리오 아닐까. 그 과정에서 현임 대통령의 치부들도 자연스럽게 다시 밝혀지리라 보고. 뭐, 말하자면 자기 손을 더럽히지 않고 '중립적인' 처벌을 할 환경을 만드는 게 야당 집권 후 가장 확실한 처벌의 시나리오가 아닐까.
2011/10/27 10:30 2011/10/27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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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yond the tide.

손가락 2011/10/22 14:14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즈음의 정치시국을 보고 있노라면 말이다. 의도했던, 혹은 의도하지 않았던 하나의 잣대를 가지게 되었고, 그야말로 '홈런맞은 투수처럼' 멍하니 바라보다 다시 끌려가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니까 말이다.

나는 사실 정치판에서 누가 정의인가를 정하는 것은 그다지 의미있는 행위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기본적으로 정치라는게 특정 이익집단의 이익추구 활동이 충돌하는 상황이므로 누군가의 이익이 누군가에게는 필연적 불이익이 될 것임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나 그 이익추구 활동이 정해진 룰대로 행해지는가라는 것이 굳이 정의(justice)를 정의(define)한다면 그 기준에 좀 더 부합할 수 있겠지. 그리고 그 정해진 룰이 또 얼마나 모두가 반대하지 않고 수긍할 수 있는가도 그 기준에 포함한다면 더 좋을 것이고.

여간 사설을 빼고, 이번에는 좀 더 해볼만한 게임인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트위터니 팟캐스트니 하는 것들은 전혀 모르시는 영감님들이 팔각모를 쓰고 탑골 공원과 시청 앞 광장을 헤메시는 동안 더 많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광장에서 웃고 떠들고 조롱하고 있는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다소 그로테스크한 대비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말이다. 굳이 열광할 이유도, 그렇다고 그들을 비꼬면서 광장 밖으로 스스로를 퇴장시킬 이유도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나도 광장을 지나가는 행인1로 그 광경을 보면서 슬며시 웃음을 짓게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 웃음이 치부가 드러난 영감님들의 추잡한 '꼼꼼함'에 대한 비웃음에서 오는 것인지 혹은 소금물을 먹고 정신차린 '전직 좀비'들이 좀 더 늘어난 데에서 오는 안도감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서도. 여간 메인스트림이 아니었던 잉여 4인방이 한 의외의 정치판 벤쳐사업은 상당히 성공한 듯 하다. 물론 그들 스스로도 메인스트림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좀 더 킹메이커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만 말이다. 여간 그것만으로도 좋다. 불쏘시개가 필요했으니까, 불쏘시개를 자처한 사람들의 역할은 유쾌하게 흘러왔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문제는 이러한 감시가 '언더그라운드'가 아닌 '메인스트림'을 통해서 앞으로 유지될 수 있는가의 문제를 생각해봐야한다. 결국, 합법과 비법-불법이라고는 못하겠다-의 회색지대에서 행하는 정치행위는 대세를 바꾸기에는 그 한계가 있다. 설사, 한번의 광풍으로 일시적인 흐름을 바꾼다고 해도, 그것을 정당성을 갖춘 기구로 합법화하지 않는한은 다시 그 역풍을 맞을 수 밖에 없음을 지난 5년동안 겪지않았나. 게다가 그 역풍은 그 전보다도 지독하고도 매섭게 불어닥쳤다는 것도 알고 있고.

내가 수능을 준비할 당시에 이런 조언을 들은 적이 있다. 넌 수능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수능 이후의 면접과 논술을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고. 네가 수능에서 일정한 점수를 받는 것은 대박, 혹은 쪽박의 복권놀이가 아니라 정해진 수순에 불과하다고. 네가 생각한대로 일정한 점수를 받고, 면접과 논술까지 완전히 준비할 때 네가 원하는 대학의 진학준비가 비로소 완성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지금의 대권놀이도 이와 비슷한 것이 아닌가? 대세의 흐름은 기울고 있다. 큰 흐름의 변화가 없는한 대권의 문제는 정해진 수순으로 흘러갈 것이다. 문제는 그 이후이지. 한 번 실패해 보았으니 이젠 어디서부터 어떻게 무엇을 바로잡아야 할 지의 우선순위와 해결방안을 고민해야 할 시기이다. 불과 1년이다. 준비하고 생각한 시간이 불과 1년여 밖에 남지 않았다. 무엇이 우선 순위인지도 알 지 못하는 무력한 이론가들은 그들끼리의 순위싸움을 하도록 두고, 더 큰 흐름을 바로잡기 위한 계획을 진행시켜야 할 때이다. 한 번의 실패와 상실로 이미 충분히 고통받지 않았나?
2011/10/22 14:14 2011/10/22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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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그러니까

손가락 2011/09/14 13:20
 난 내가 훌륭한 학자가 될지는 모르겠다. 다만 요즘 느끼는 것은, 결국은 학자가 될 것 같다. 나는 어려서부터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미숙함을 빚고, 많은 실망과 고통을 겪는 일이 많았다. 다른 사람이라면 별 일 없이 지나갔을 일들도 항상 문제가 되곤했지. 다만 내가 그런 결정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그런 감정과 고통들을 글로 표현할 줄 아는 재주를 지녔기 때문인 것 같다. 어려서부터 그 흔한 비디오 게임기조차 없어 그저 하루 종일을 책을 보면서 소일 할 수 밖에 없었고 늙은 노인네들의 표현을 읽고 따라하다보니, 소위 말하는 '학교에서 먹히는' 글빨을 갖게 된 것 같다. 어려서 귀에 닳도록 들은 성경 덕분에 오만가지 비유에도 능란(?)하게 되었지. 그러다보니 성질을 낼 장소를 일기장과 원고지에서 찾게 되었고, 아둔한 동년배들을 '알아채지 못하는' 방식으로 엿먹이곤 했었다. 그리고 밖으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의 격변을 풀어놓을 곳을 글 위에서 찾게 되었다. 바로 지금처럼. 덕분에 글쓰고, 읽는 일을 어렵게 여기지 않게 된 것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다. 게다가 바로 이 블로그처럼 내 마음대로 글을 휘갈기고 휘두를 수 있는 공간까지 찾기에 이르렀지. 물론 읽는 이들에게는 다소간의 고역이 될 지 모르나.

 글, 글, 글. 결국 남는 것은 글과 생각들 뿐. 생각을 담아놓는 이 작은 그릇들 안에 얼마나 많은 순간들이 숨어있을까. 지난 글들을 되돌아 읽어보며 그 순간들의 감정들을 다시금 느껴본다. 부끄러움이 대다수를 차지하지만, 어찌하리. 지금 이런 글들을 쓰고 있는 이 순간의 감정들도 결국에는 부끄러움이 될 걸 안다. 그래도 쓴다. 끄적끄적.

 생산적인 글쓰기란 무엇일까. 블로그 초기에는 기획성의 기사들도 많이 쓰고, 나름은 편집의 형식도 갖추려 노력해보았는데, 결국은 어느 순간엔가 반쯤은 일기장이 되어버렸다. 결국 개인 블로그라는게 그런거 아닌가? 내가 여기에 내가 전공하는 evolutionary game theory 내용을 쓸 수는 없잖아? 그럼, 이 블로그는 진짜 산으로 가게 된다고. 물론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허나 그 극소수의 대다수(90%이상)은 한글을 인식조차 못하는데 수고의 필요를 못느끼는 것도 당연지사.

 솔직히, 나는 지금 극도의 슬픔과 우울을 느끼고있다. 다만 이렇게 중구난방으로 글을 쓰면서 그것들을 추스리고 있을 뿐이지. 쏟아 놓을 것은 쏟아 놓아야지. 결국 넘치게 담은 물은 넘치게 마련이니까. 망할.
2011/09/14 13:20 2011/09/14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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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과 질문

손가락 2011/07/17 02:07

시험도 끝나고 모처럼만의 방학을 보내고 있다. 안그래도 뭔가 집에서 할 일이 없을까 빈둥대던 와중에 한국에서 가져온 DVD를 보았다. 영화 제목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나온지도 꽤 된 영화고 많이 알려진 영화라서 자세한 줄거리 및 영화 관련 제반사항은 생략. 영화에서의 메인 토픽은 인생의 궁극적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다니는 것인데 그것을 위해 만들어진 수퍼 컴퓨터 '심오한 생각 Deep Thought'가 궁극적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고자 (적접 도출이 어렵다는 것을 안게지) 만든 샘플 셋이 지구라는 설정인데. 결국 이 '궁극적 질문'에 대한 답(?)은 이렇다.

1. 42
2. It is wrong question(Command)

See the truth


라는 컴퓨터스러운 답변을 내놓는다.
주인공들에게 부연설명 하는 바로는 결국, 정확한 인생의 궁극적 질문 따위는 없다. 그딴거 질문 찾고 답 찾고 할 바에야 차라리 현재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더 낫다는 말을 하는데. 음. 이 영화를 매우 많이 본 나로서는 새삼스럽게 설득력을 갖는 이 대사들을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과연 '완벽'의 모습을 모르는 인간이 '완벽'을 구현할 수 있는가? 유한한 상황과 유한한 상상력만을 가진 인간이 무한한 상황과 변화에 대한 완벽하고 변하지 않는 해답체계를 구현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새삼스럽게 흘러나온다. 결국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어찌해도 대답할 수 없는 질문에(과) 답을 찾으려 헤메느니 차라리 그 정력을 현재를 즐기는 데에 사용하면 적어도 너의 효용는 높아질 것이다'라는 말이다.
의미없는 질문과 의미없는 답들의 연속이라. '수많은 (철)학자라고 하는 인물들의 행동이 뻘짓거리 일리 없어!'라는 억지는 집어 치울란다. 어차피 그건 답과는 무관한 전형적인 '권위에의 호소'니까. 그럼 뭐냐, 내가 하려고 하는 질문들과 그 답들이 과연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것들인가를 생각해봐야지. 공부를 집어 치우고 딴 걸 한다고 내가 이만큼 행복해 질까? 적어도 나는 인간을 탐구하고 그것들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데에서 나의'행복'과 '의미'를 찾는 사람인데. 행복과 궁극적으로는 관련이 없는 질문을 던지고 답을 하는 데에서 행복을 얻는다라. 상당히 모순적이고도 아이러니한 상황임에는 분명한데, 그것이 현실이다. 현실이 그러할 진데, 내가 살아가는 방식을 바꿀 이유야 없지. 적어도 다른 방식의 수단이 생겨서 더 큰 행복을 느낄 수 있게 되지 않는한.
 그럼 내가 하는 행동은 궁극적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거야, 눈앞의 행복을 찾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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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17 02:07 2011/07/17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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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언

손가락 2011/06/21 09:14
세대 충돌로 오인되고 있는 작금의 계급 투쟁에 대한 첨언.

보이고자 함은
1) 현재 진행되고 있는 투쟁의 본질은 세대간 충돌이 아니라 노동 대중과 유산(불로소득)계층의 투쟁이다.
2) 현재의 '반값 등록금' 논쟁은 구체화된 계급 투쟁의 슬로건이다.
3) 계급 투쟁의 실제적 결과를 얻기 위해 현재 유산계급에 의해 독점되고 있는 물적 기반을 전복하여야 한다. (혹은 노동계급이 독자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의 확보가 필요하다)

1) 현재 진행되고 있는 투쟁의 본질은 세대간 충돌이 아니라 노동 대중과 유산(불로소득)계층의 투쟁이다.

  이는 매우 자명하다. 투쟁의 참여계층은 '등록금'을 부담할 수 없는 대학생들과 그들의 부모들이다. 즉, 일반적인 노동을 통해 고가의 대학 등록금을 부담하지 못하는 가구의 구성원 전체가 투쟁과 연관된, 혹은 투쟁에 공감하는 (잠재적) 구성원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현재의 등투는 학생부터 그 부모세대에 이르는 광범위한 세대와 연관되어 있다. 또한 그들이 공통적으로 등록금을 부담할 만한 물적 기반이 부족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바, 현재의 투쟁은 유산 계급과 노동 계급 사이의 계층 투쟁이다.

2) 현재의 '반값 등록금' 논쟁은 최초의 구체화된 계급 투쟁의 슬로건이다.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구체적인 계급 투쟁이 전면에 드러난 것은 내가 알고 있는 한 최초의 사건이다. 그동안 민주화에 대한 요구는 투쟁 계층의 대다수가 무차별적 일반 대중, 혹은 대학생이라는 측면에서 그 투쟁의 주체가 경제적 기반을 중심으로 한 투쟁이라기보다는 정치적 입장을 기반으로 한 투쟁이였다. 물론 정치적 기반과 경제적 기반이 매우 필연적인 연관이 있었지만, 그 대중이 갖는 경제적 기반의 이질성의 차이가 명백하지 않았다. 그러나 현재의 투쟁은 등록금의 지불이 가능한 계층과 불가능한 계층 - 그리고 이는 유산계급과 무산계급을 나누는 경계선과 일치한다 - 이라는 명확한 경제적 차이를 경계선으로 계급을 차이짓는다. 그러한 측에서 볼 때, 현재의 논쟁은 한국 정치사상 가장 최초로 등장한 (경제적/유물적) 계층 구분을 시도하였으며, '반값 등록금'은 이러한 무산 계급의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에 대한 정정 요구를 담는 한국 정치사상 최초의 구체화된 계급투쟁의 슬로건이라 할 만 하다.

3) 계급 투쟁의 실제적 결과를 얻기 위해 현재 유산계급에 의해 독점되고 있는 물적 기반을 전복하여야 한다. (혹은 노동계급이 독자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의 확보가 필요하다)

 우리는 이를 통해 한국에서 왜 '벤쳐'와 '청년 창업'이 불가능한가에 대한 답을 명확히 얻을 수 있다. 즉, 유산 계급은 무산(노동) 계급이 자신들의 유물적 기반에서 벗어나 자체적인 생산 능력을 갖추기를 원하지 않고 있으며, 이들은 자신들이 가지는 법적, 경제적, 정치적 기득권을 통하여 이러한 '새로운' 생산 수단의 창조를 방해하는 것이다. 혹은 이들이 만든 새로운 생산 수단을 독립화하기 보다는 자신들의 물적 기반 안으로 편입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러한 질문에 대한 답은 역시 매우 자명하다. 이러한 유산 계급의 가장 정당화된 무기인 법적, 정치적 정당성을 박탈하는 것이다. 이는 '투표'와 '선거'를 통해 법적, 정치적 정당성에 대한 유권해석을 할 결정권자인 대의원, 혹은 대통령의 선출을 통하여 가능하다. 법적, 정치적 강제성을 통하여 유산 계급의 기득권을 약화시키고 정당하게 그들의 물적 기반 위에서 벗어난 독립된 생산수단을 가짐으로서 무산 계급은 중산 계급이 될 수 있으며, 대중적 연합을 통해 이러한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

3줄 요약
1) 현재의 투쟁은 무산-유산 계급간의 계급 투쟁이다.
2) 유산 계급은 그들이 지배한 언론을 통해 이를 세대간 충돌로 호도하려 한다.
3) 무산 계급은 문제의 본질을 바로 보고 이를 투표권 행사에 반영하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첨언하자면 소위 말하는 '진보 진영'은 정치적 최저점에서 연대의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즉, 유산 계급의 불공정한 기득권 점유의 타파를 위한 정치적, 법적 정당성의 획득을 연대의 기초로 봐야한다. 적어도 유산계급의 기득권을 분배하는 데에서 일말의 이득이라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어떤 결과가 나오든 Pareto Improvement가 가능하다는 말씀)
2011/06/21 09:14 2011/06/21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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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성기

손가락 2010/12/23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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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시간이 나서 인터넷으로 한국 뉴스들을 찾아보고 있다. 네이버나 다음 같은 인터넷 미디어 포탈 사이트들이 어차피 한번 거르고 내보내는 인터넷 기사들인지라 그 제목들이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상당히 자극적인 제하에 꾸며진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양쪽 다 상당히 극단적인, 정상적인 정치적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느 쪽에도 반감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는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말하자면 민주당이 집권했다면 북한 협박에 훈련 포기할 건가 (조선) 라던가  "사탄의 훼방에도 이명박 장로가 국정을 잘 살펴…"(프레시안) 같은 기사들이 상당히 눈에 띄는데 양 쪽 모두 자극적인 주제를 통해 현재 자신들의 지평에 있는 독자들에게 상대 지평에 대한 반감을 증대시키고, 본인들의 신념에 대한 '정상'적, 혹은 '상식'적 이라는 정당성을 부여하게끔 의도된 기사임이 보인다. 그렇지만, 어느쪽도 사실은 정말로 균형잡힌 시각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극단적인 상황들을 다루고 있기에 그러한 기사들을 보고 그러한 기사들을 반대한다고 하는 것과 그 사람이 그 기사와 반대되는 정치적 견해를 갖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상당히 큰 차이가 있어보인다.
 사실 굳이 좌파가 아니더라도 이명박 장로가 사탄의 공세를 잘 막아냈다는 말에는 기독교도가 아닌 우파에게는 상당히 반감이 될 만한 기사이고, 반대로 좌파적 견해를 갖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자주 방위가 국가 독립의 기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대표적 인물이 노무현 前대통령)에게는 북한 협박에 훈련을 포기한다는 견해에는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기에 일부 극소수의 견해를 가진 이들을 제외하고는 이런 기사들이 상당히 광범위한 대중에게 정치적 프로파간다로서 '먹힐만한' '떡밥'인데, 문제는 이런 지평을 극단적으로 설정하지 않는 (메이저) 언론이 한국에는 마치 없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좌우 양쪽 모두 극단적인 상대방의 지평 형성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설정하고 있는데, 그런식의 지평 형성은 대중들이 자신의 정치적 견해의 지평을 형성하는 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심지어는 상당히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나 같은 경우만 봐도 이명박 장로의 사탄의 훼방 운운에는 상당히 반감을 갖고 있지만, 동시에 북한 협박에 굴복한다거나 북한의 비이성적인 행태에 순응하는 것에도 반대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양 쪽의 극단적인 경우를 볼 때, 일반 대중이 (극단적인) 상대의 지평을 반대하는 식으로 자신의 지평을 형성하는 것은 매우 혼란스럽고 어려운 일이다. 일반 대중에게는 (극단적이지만) 우파 = 이명박 장로 이고 좌파 = 종북분자 로 구획화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언론들이 노리는 것도 이러한 극단적인 편가르기에 있다는 점이다) 그런면에서 역설적으로 한국의 언론들은 소위 말하는 Median Voter Theorem에 상당히 충실한 행태를 보인다고 하겠다.
 그래서 드는 생각인데, 한국의 언론이나 정치정당들 중에 중도로서의 위치를 잘 설정한다면 소위 '대박'을 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의 언론과 정치정당은 극단적인 반대를 설정함으로서 그것을 제외한 전부를 자신의 영역으로 설정하는 행태를 보이는데, 그러한 측면에서 양 쪽 극단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측이 소위 말하는 '부동층'으로 선거의 행방을 좌우한다. 그런면에서 이명박 정부는 (자신이 하는 행동 중에 극단적인 성향으로 보이는 행태를 강화하고 있으니) 상당히 바보짓을 하고 있는 것도 분명하고. 반대로 야당은 이런 좋은 찬스를 잡지못하고 자신의 중도적 성향을 강화해 부동층을 끌어모을 생각을 못하니 이것도 또다른 형태의 바보짓이고. 생각해보니 한국 정치인들이나 언론인들은 상당히 머리가 나쁜것 같기도 하고. (단순히 공부 잘하고 조직에서 높은 자리에 올라간다고 머리가 좋은 것은 아니지 않나?) 여간. 요즘 정치판을 보면 한국 정치인들은 정말 모두 바보가 아닌지 생각이 든다는.
2010/12/23 08:26 2010/12/23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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싼 거, 비싼 거

손가락 2010/09/20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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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거시숙제를 끝내고 받아놓은 '제빵왕 김탁구' 마지막 회를 시청하였다. 하아. 미국에 와서도 결국 한국 드라마를 보는 상황이 좀 아이러니 하기는 하지만 태생이 그런 것을 어찌할지. 사방이 영어로 둘러싸여 (정말 이동네는 전형적인 미국 도시이다. 심지어는 작은 한국 음식점에서조차도 한글 간판을 찾아 볼 수가 없다) 백날 영어로 떠들어대도 집에 들어와서는 한국 웹서핑에 한국 드라마를 보고 있으니 말이다. 여간. 통속적인 권선징악 스토리 라인에 지나치게 밝은 남자 주인공과 지나치게 못난 안티 히어로들이 등장하고 여자 주인공이 이야기 전개 도중에 산(?)으로 가버리는 우를 범하기는 하였으나 나름 간만에 재미있게 보았던 드라마이다. 요즘 KBS가 수목 드라마를 거의 점령하다시피 한거 같은데 (아이리스-추노-김탁구) 의외로 드라마들은 방송국이 하는 작태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 듯 하다. 이런걸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양가성이라고 해야하나, 여간 KBS에 대한 좋지 않은 시선은 여전히 있는 듯 하고. 이야기가 점점 산으로 가고 있는데, 드라마의 스토리는 제껴두고 상당히 진정성이 있는 드라마였다.
 무엇보다도 확실히 세대가 (드라마를 시청하는 세대도, 만드는 세대도) 바뀌었음을 알 수 있었는데, 무엇보다도 성공에 대한 인식이다. 확실히 과거 드라마는 같은 전형적인 주제들 -출생의 비밀, 가족 기업, 암투-을 다루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이 본인 자신의 삶의 의미를 충족시키기보다는 (물적, 심적) 소유욕에 근거한 이야기의 전개를 따랐다. 굳이 따지자면 '부숴버리겠어,' 뭐 이런 마인드인게다. 그러니 소위 말하는 '욕하며 보는 드라마'가 생겨난 것이고, 뻔한 자극에 따르는 그야말로 '배설적인' 카타르시스를 양산하는 형국이었다. 이에 반해 본 드라마는 주인공이 '제빵왕'이라는 다소 웃기면서도 소박한 제빵사를 목표로 삼고 사람 자체를 위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에서 조금은 다른 점을 보인다고 하겠다. 말하자면 성공이라는게 단순한 소유라는 정적 상태에 그치지 않고 성취라는 동적 상태를 이루는 과정으로 표현했다는 것인데 (굳이 경제학의 표현을 쓰자면 이룰 수 없는 steady state을 만들어내려고 하기보다는 steady state으로 가는 equilibrium path를 찾아 여기에 올라타는 것에 초점을 맞춘 드라마라고나 할까) 이러한 변화가 확실히 세대가 변하면서 나타난 인식의 변화를 잘 잡아내고 있다.
 또한 생각보다 이 드라마가 통속적인 전개과정을 따랐음에도 불구하고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은 끝을 맺는 방법을 잘 선택했기 때문인 것 같다. 사실 드라마의 마지막회라는게 주인공들의 뒷이야기를 담아주고 그후로도 오랫동안 어찌어찌 잘 살았습니다 하고 급마무리 하는 형식을 띠는게 전형적이었고 이 드라마도 그 흐름에서는 역시 벗어나 있지 않은데 그 끝맺음이 어색하지 않고 매끄럽게 마무리되었다는 점에 칭찬을 해주고 싶다. 뭐 말하자면, 중요한건 메시지지.
2010/09/20 16:20 2010/09/20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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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되겠니?

손가락 2010/01/15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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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하지 말고 들어~ 연봉 2억에 안되겠니?

우리나라 야구는 NPB 2군?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꺼내야 할까? 사실 현대 스포츠는 전형적인 상업오락물의 하나이기에 자본의 논리로 모두 해결하려고 하면 안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비논리적인 이야기이다. 그렇기에 여기에서 미국, 일본의 자본력에 대항해 한국 리그의 자존심, 혹은 독립된 리그로서의 자존심 등의 이야기를 언급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한국 프로야구가 일본 프로야구나 미국 메이저리그의 하부 리그에 불과한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한-미-일의 야구시장과 유사힌 계급관계(?)를 갖는 유럽 축구시장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네덜란드의 에리디비지에(네덜란드 리그)는 유럽 내의 빅리그(스페인,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잉글랜드)에 유망주를 공급하는 전형적인 하위 리그의 형태를 하고있다. 인구가 남한 인구의 반절이 채 되지않는 네덜란드이기에 많은 축구인구를 갖는 대형 시장이 갖는 자본에 자국 리그의 유망주를 넘겨주는 것은 네덜란드에서는 (그리고 여타 군소리그에서는) 당연하다시피한 결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K 리그에서 뛰던 이청용 선수가 시즌이 채 종료되지 않은 시점에서 잉글랜드 시즌 개막에 맞추어 이적한 사실에 대해서는 분개는 커녕 환호와 축하를 보내면서 어째서 한신의 김광현에 대한 지목에 대해서는 분개와 야유를 보내는 것일까? 이는 사실 한국 리그의 영세성이나 협소함의 문제이기보다는 일본이라는 국가가 갖는 특수성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일례로 일본 J리그로 진출한 이근호에 대한 세간의 조롱을 보면 그러한 예는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안타깝게도 한국인들은 일본의 좋은 스포츠환경에 대해 전혀 생각을 하지 않고 자존심과 연봉액이라는 단편적인 부분만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아쉬움이 든다. 만약 한국 프로축구 구단의 한 선수를 분데스리가의 레버쿠젠이나 세리아의 팔레르모 등의 구단이 자유이적이 가능해지는 대로 영입하겠다고 한다면 모두가 지금처럼 분개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리라 본다.

그리고 한국 프로야구의 영세성이라는 표면적인 상황을 보기에 앞서 프로야구의 탄생이라는 정치적 맥락을 논해보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한국 프로야구의 출범은 너무나도 잘 알려져있듯이 전두환의 3S 정책의 일환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즉, 국민들의 정치적 관심을 '매일 계속되는' 여가거리에 돌리게 하기 위한 소프트 파워의 일환으로 고안된 것이 바로 한국 프로야구의 시초이다. 그러한 태생이 말해주듯 한국 야구위원회의 총재는 정치권의 낙하산 인사들이 맡는 것이 관례이다시피 하였다. 얼마 전에 사망한 두산 그룹의 전 회장인 박용오씨(1998년 취임)가 최초의 '민간인' 총재였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여담이지만 선임 총재였던 정대철의 구속으로 인해 총재직의 수행이 불가능해짐에 따라 가능했던 총재였다는 말도 있긴 하다) 그러한 맥락에서 정치권의 지시로 이루어진 일선 기업들의 홍보전략의 일환으로서의 프로구단은 사실 기업 홍보부서의 부대 조직에 불과했을 터이다. 그러한 맥락이기에 일본이나 미국에 비해 터무니 없을 정도로 저렴한 비용으로 야구관람이 가능했던 것이었고, 한국 시리즈가 열리던 92년 광주에서 그렇게 많은 부라보 콘들이 관중석 위를 날아다닐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형편에서 각 독립이 (현재의 히어로즈처럼) 불가능한 야구 구단들의 상황은 팀 성적이 팀 유지의 절대적 근거가 되는 일본과 미국 리그에 밀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일례로 도미니카나 멕시코처럼 독립리그의 형태로 유지되는 리그들은 '심지어는' 한국 프로야구의 팜이 되기도 한다. (구톰슨과 로페즈 역시 그 곳에서 긁어낸 보석임을 잊지말기를) 그런 맥락일진데, 각 기업들에게 더 많은 고객을 유치하기 위한 선투자를 통해 흑자구단으로의 전환을 모색하라는 것은 괜한 부스럼을 만드는 행동에 다름없다. 일단 각 기업이 구단을 가지고 일정한 액수를 '배당'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한 홍보효과를 갖고 있는데 굳이 무리한 투자를 통해 공격경영을 할 인센티브는 없는 것이다. 그러다가 만약 생각한 것 만큼 큰 홍보 효과를 거두지 못하면? 그러면 구단주는 투자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문책당할 것이 자명한데 그러한 불분명한 투자에 선뜻 나설만큼 계산에 둔한 기업은 없다. 적어도 한국에서 10대 그룹에 든다고 손꼽히는 기업일진데 말이다. 한편으로는 일정한 배당금을 내주면 안정적 홍보 효과를 주는 홍보수단을 쉽게 다른 이에게 내줄 리도 만무하다. 둘을 운영하기는 힘들지만(귀찮지만) 하나는 확실히 갖는 것이 기업 이미지 제고에 큰 힘이 되니 말이다.

그렇다면 독립한다면? 피치 못할 사정으로 독립한 구단의 고충을 너무나도 처절하게 한 구단이 겪고 있지 않은가? 불과 8개의 구단 사이에서도 히어로즈는 팜으로 전락할 상황에 처해있다. (그리고 그러한 예상은 상당 부분 맞아들어가고 있다) 그렇게 야구를 사랑하고 기업들에 왜 공격적 투자를 하지 않느냐고 묻는 소위 말하는 야구팬들의 의식 수준은 딱 그 정도이다.

한국의 정치개혁이 왜 이렇게 더디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대답한 다른 이의 말이 생각나 인용해본다. 한 나라의 정치 수준은 그 나라 국민의 정치적 수준만큼만을 반영한다고. 4대 강을 삽질해대고 원전 수주했다고 희희낙락해대는 정권의 이면에는 딱 그 정도인 국민이 있다는 말이다. 국가의 수준이 바뀌길 원하는가? 당장 이번 지방선거에서부터 적어도 최선이 아니라 차악을 선택하기 위해서라도 노력하고 참여해봐야 할 것이다. (참고로 나는 20세 이래로 군대에 있을 때조차 모든 선거에 참여해왔다.) 한국 야구가 일본 야구의 팜이 되지 않기를 원하는가? 내일 당장부터라도 야구장을 찾아보아라. (특별한 응원구단이 없다만 이왕이면 히어로즈로)

추신 : 난 절대 히어로즈의 팬이 아니다. 한화의 팬이다. 올해는 두산전 승률 좀 높여보자. 제발.

2010/01/15 01:02 2010/01/15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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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전역기

손가락 2009/05/20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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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망할. 드디어 다 끝내고 나왔다. 전역한지 열흘이 넘어서야 정신을 챙기고 글을 쓰기 시작했으니 자유의 기쁨이란 정말 많은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여간 별 탈 없이 전역해서 학교를 다니며 수업을 듣고 영어수험을 준비하고 개인적인 논문도 서서히 시작하고 있다.

다 좋은데 소위말하는 학업계획서라는 것을 근 8년만에 다시 쓰려다보니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내가 왜 공부를 시작했는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오게되었는지 등을 말이다. 생각해보니 지금도 공부를 계속하는 것은 그다지 거창한 목표나 신념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하게된다. 지금 하고있는 공부가 재미있고 결과적으로는 더 이성적은 사회를 만드는 데에 도움을 줄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조금씩 발견하게 된다는 정도. 남들과는 다른 형태의 운과 기회가 공부를 좀 더 오래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게 만들어주었고 그 가능성을 기반으로 공부로 평생 벌어먹고 살기 위한 발버둥을 치고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남들을 가르치는 직업을 가지려고 한다지만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나는 남들과 이야기하는 데에는 영 소질이 없다. 차라리 글을 쓰는게 낫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무언가를 잘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나에게 남들을 가르칠 기회를 준다는 것은 아이러니컬한 면이 없지 않다. (물론 그런 가능성이 현실화되기까지는 최소 6년의 시간이 흘러야겠지만)

그리고 내가 알던 많은 사람들이 떠나가고 그 자리를 다른 사람들이 대신한 것을 보면서 나도 문득 떠나야 할 때가 되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된다. 아쉬움과 섭섭함,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 같은 것들을 막연하게 가지고 있지만 예전에 가지던 두려움은 사라진 것 같다. 가끔은 이것이 전역자의 위력인가 하는 느낌마저도 받는다. 내가 군대에서 겪은 많은 것들은 겪지 않았음이 더 나았을 것들이지만 세월의 흐름에 무덤덤해진 것, 자신의 삶에 몰두하는 것은 새롭게 알게 된 것이다. 물론 군대가 아니라 군대에 있던 연령대에 기인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홀가분하다. 그야말로 많은 것을 털어버린 것만 같아서. 남들도 다 하는 군생활이라지만 말이다. 다시 노래를 부를 수 있고 점심메뉴를 선택할 수 있는 인간이 되어서 기쁘다.
2009/05/20 00:57 2009/05/20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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