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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2/01/28 거시 호구의 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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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11/04/15 Where is the love?
  5. 2010/04/28 Not surprising
  6. 2009/04/29 너희들 다 어디가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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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전망

Ceteris Paribus 2012/01/31 07:06
요즘 신문을 가만히 보고 있자면 근대 국가의 존재에 대한 정당성의 문제를 생각하게 된다. 말하자면, 근대 국가가 폭력을 유일하게 사용할 수 있는 권위가 된 상황에서 계속되는 (거대) 국가의 정책실패가 과연 국가가 권력을 이양받을만한 유일한 그 이유를 정당화시켜주는가의 문제를 생각하게 된다. 더 쉽게 말하자면, 개인들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는 민주주의의 비효율성과 질서 유지라는 이득 사이에서의 비용-이득의 가늠을 해 볼만한 시간이 되었다는 이야기이지.

특히나 근대 국가가 미디어를 통해 자신들의 정책과 행동을 마치 잘 전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실제로 구성원들이 느끼는 국가 정책에 대한 거리감과 실제 접근 가능한 거리간의 괴리를 위장하는 것에 불과하다. 말하자면, 국민들은 자신들의 투표행위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가장 결정적인 것처럼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 투표행위가 미칠 수 있는 영향은 그렇게 크지 않다. 대표자를 선출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선출이지, 그 대표자를 끌어내리기 위해서는 대표자를 선출한 것보다 더 많은 행위가 필요하고, 심지어는 자신의 생각과 다른 하위 대표자들의 동의마저 필요하다. 이는 근대 민주주의가 관료적 정당 체계에 기반을 두고있음에서 비롯하는 체계적인 비효율이며 적어도 현재의 관료적 정당체계가 파괴되지 않는 한은 근본적으로 수정될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모든 사람이 모든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고, 필요한 정보를 얼마든지 양방향으로 전달할 수 있는 그야말로 정보화시대에 과거의 일방향적 관료적 정당체계에 기반한 정치 체계를 굳이 지지할 이유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말하자면

1. 근대 민주주의가 가지는 비효율성이 현재의 '위기상황'의 근본 원인이다.
2. 기술적 기반이 확보된 현재에 이러한 근대 민주주의의 비효율성을 수정할 가설을 세워보자.

다소 뜬금없지만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보자 한다.
먼저 왜 근대 민주주의가 가지는 비효율성이 현재의 '위기 상황'의 근본 원인인가? 이는 일전에 본인이 쓴 글 - 거시 호구의 거시 - 과도 맥락을 같이하는 주장이다. 즉, 미래 상황을 합리적으로 대비하지 않고 빚잔치를 벌인 정부/정권들의 행동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하는 문제이다. 그 원인은 근대 민주주의 정권이 독재를 방지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제정된 단임제 - 혹은 연임제 - 정권들 사이의 정권 교환이 정책의 일관성을 가져오지 못한 것에 있다. 대부분의 근대 정당 민주주의는 선출 관료와 이들에 의해 지명되는 임명 관료들에 의해 정권이 유지된다. 이들 임명 관료들은 정권 유지를 위한 정당성이 확보되는 유일한 수단, 선거에 이기기 위한 득표 집단을 동원한다. 이를 정당 머신(machine)이라고 베버는 표현하였는데 말하자면 국회의원 - 보좌관 - 지구당의 형태로 유지되는 전형적인 정당 형태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정당 머신이 생계로서의 관료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정권을 유지하여야 하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투표자들에게 접근 가능한 정보를 왜곡시키고 동원을 통해 반대 의견을 무력화시키려 한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국민들에게는 채권의 발행을 통해 국민들에게 더 많은 일자리를 주고 물가를 내려 생계를 안정시켜주겠다고 말하지만, 실은 그것이 자신들의 자녀 세대에게 빚을 지우고 자신들의 생계를 일시적으로 도모하게 하려는 수단임은 묻지 않는 것이다. 오직 보이는 것은 일자리와 물가, 이 두 가지 프로파간다일뿐. 이러한 왜곡과 정권 유지는 지역구 시의원 선거부터 대통형 선거까지 관료제의 특성이라고 말할 수 있는 체계적이고 동일한 형태의 복제를 거쳐 실현된다. 말하자면 동일한 맥락의 왜곡이 좁은 지역 선거에서 넓은 지역의 선거까지 반복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관료제 민주주의의 비효율성이 어떻게 극복될 수 있을 것인가?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가장 좋은 수단은 현재의 관료제 민주주의에 기반하는 가장 폭력적인 기구인 국가를 해체하는 것이다. 유사 이래로 근대 민주주의 국가만큼 체계적이며 폭력적인 압박을 개인의 행동에 가하며 이를 정당화하는 체제는 존재하지 않았다. 제아무리 전근대/중세의 국가가 봉건적인 특성을 지녔다고 하지만 현재처럼 모든 인간의 행동에 대한 체계화된 규정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덕분에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임의적 판단이 판을 치던 시대였지만, 현재의 대법원이나 청와대라고 그렇지 않은가? 예나 지금이나 정치적 판단은 결정권자의 임의적 판단에 의존한다. 그렇게 좋아하시는 헌법이나 성문법은 엿이나 먹으라지. 여간. 이러한 거대한 기구가 소수의 임의적 판단에 의해 정책을 결정하는 경우 정책의 효율성이 떨어지게 되고, 실패의 여파도 크게 미친다. 즉, 정책결정을 하면서 판단해야 할 조건들이 많기 때문에 가능한 - feasible한 - 정책의 수단이 적어지고, 생각하지 못했던 변수들이 계속 튀어나오게 되면서 정책의 목표가 흐트러지거나 그 효과가 떨어지게 된다. 게다가 실패할 경우, 넓은 지역에 많은 사람들에게 그 여파가 미치기때문에 실패의 위험성도 커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말이지. 근본적으로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은 독일식 정당명부제고 나발이고 체계적인 비효율은 계속된다. 오히려 정당명부제는 중앙당에서 비례선출된 대표권한을 분배하는 식이므로 이러한 관료적 비효율성이 심화될 가능성을 상당히 내포하고 있다. 석패율제는. 훗, 그따위 개소리를 가지고 나불대는 것들은 학부에 가서 정치학 입문부터 다시 배우고 오라고 해라. 여태껏 근대국가가 관료적 민주주의를 유지한 것은 이러한 제도가 광역화된 지역에서 모인 자원을 집중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중앙집권적 제도였기 때문에 성장에 도움이 되었다는 점때문에 유지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세계사책을 펴서 보면, 유럽 국가들이 경쟁적으로 제국주의적 확장을 시도했는데, 이러한 시도는 많은 자원과 실패의 위험이 동반된 일종의 모험사업이었고, 이를 위해 자원의 집중과 실패의 손실을 분산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경쟁적으로 중앙집권화를 시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탈리아가 발전이 늦게 시작되었네 하는 이유를 이탈리아 반도의 영방국가화와 묶어서 설명하는 이유가 다 이런 맥락에서 나온 말이다. 그런데, 이런 중앙집권화의 열매와 이면의 독을 다 보았을때, 이제는 열매는 다 맛보았고 서서히 독이 온 몸으로 퍼지기 시작한 단계가 된 것이다. 다른 의미에서 보자면, 경제학 이론에서 설명하는 성장곡선은 항상 오목한 - concave한 - 형태를 가지고 있는데, 성장 초기단계에는 높은 성장률을 보이지만 성장이 진행될 수록 서서히 성장률이 낮아진다는 경험적 가정을 포함하고 있다. 나는 현재의 중앙집권화의 비효율성에서 초래되는 손실과 성장의 이득이 반전되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판단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비효율성을 극복하기 위해 낮은 수준의 폭력성을 지닌 영방국가/연합국가의 형태로의 해체수순이 필요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스위스의 칸톤 시스템을 생각해 볼 수 있겠지. 문제는 현재의 국가들이 중앙집권화된 국가를 기준으로 설계되면서 발전되어왔기 때문에 많은 생산 수단들이 일정 지역 - 예를 들자면 서울 - 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생겨나는 문제가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균형발전과 생산 수단의 지방 이전이 그 과도적 형태에서 필요한 정책이다. 현재의 빠른 정보화 기술이 사실상의 직접 민주주의를 일정한 범위 내에서 - 시, 군, 더하면 도까지 - 가능하게 하기 때문에 생산 수단이 확보된 상태에서 각 지역 정권들이 유연한 정책결정을 통해 최대의 효율성을 추구하기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말하자면 이러한 이전을 통해 중앙집권화된 근대 국가의 비효율성을 극복하고 현대 국가로서 자연스럽고 빠르게 이전하는 국가가 지속적이며 높은 성장 및 복지를 추구하는 국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꼬리 1. 누구처럼 전국의 하천 운하를 수도권으로 연결해서 하나의 일률적인 운하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하시는 분은 이러한 흐름과는 정반대로 가시는 분이지. 그나저나, 이제 그것들은 다 어떡하지. 복구하는데도 돈이 엄청 깨진다는데.
꼬리 2. 그렇지 않다면 운하 지하에서 다이아몬드 광산을 발견하거나 이멀젼(참조:gears of war)을 발견하면 모르지.흠.
2012/01/31 07:06 2012/01/31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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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시 호구의 거시

Ceteris Paribus 2012/01/28 05:02
[본 글은 본인의 전공과는 전혀 무관한 거시경제에 대한 사견을 담고 있으며 학계 주류의 일반적인 상식이나 이론적 근거를 포함하는 글이 아닙니다. 참고로 전 거시는 '전혀' 모릅니다]

그래, 그놈의 글로벌 위기, 글로벌 경제. 하도 짖어대다보니 뭐가 문제인지, 뭐가 문제가 아닌지도 분간하기가 힘들어졌다. 도대체 뭐가 문제길래 이리 우왕좌왕하면서 말들만 많고 성과는 보이지 않는건가. 나오고 있는 이야기를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1. 국가 내 세대간 자원 분배의 격차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
2. 지역 간 성장 속도의 격차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

청년 실업과 관련된 레파토리들은 첫 번째 주제에 속한 이야기일 것이고, 유럽발 -이게 정말 유럽발이냐?- 금융위기에 관한 레파토리들은 두 번째 주제에 속한 이야기일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보기엔 이 두 가지 문제가 같은 원인에서 비롯한다고 본다. 그 원인은 바로 myopic time-inconsistency. 굳이 한글로 바꿔 말하자면 근시안적 동태 비일관성이랄까. 한글로 바꿔 말하니 무슨 말인지 더 모르겠다. 여간 요지는 국가나 지역 정부같은 정책 결정자들이 지속적으로 근시안적 정책을 사용했는데, 이런 정책이 시간이 변하면서 말을 바꿀 소지가 있는 문제를 낳았다는 것이다. 이 상황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한국적 은어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카드깡'. 나중에 갚기로 하고 돈을 빌려서 쓰고 아들한테도 이런 상황을 권했는데 - 이 쯤에서 오래된 모 카드사의 "아버지는 말하셨지 그걸 가져라" 라는CM이 권떠오르는 건 왜일까 -  막상 아들이 그 카드를 물려받고 보니까 계좌엔 빚만 잔뜩 있고 담보를 할만한 자산이 전혀 없는 상황인거지. 아버지 딴에서는 새로운 자산이 생기겠거니 하고 본인이 물려받은 재산을 죄다 담보잡혔는데 말이지.

비유로 돌아가보지 말고 이야기를 해보자면 이렇다. 주제를 뒤바꿔 두 번째 이야기, 지역간 성장 속도의 격차부터 풀어보자. 소위 말하는 선진국들이 과거 번영을 얻게 된 것은  (적어도 내가 보기엔) 제국주의 시절의 무한에 가까웠던 무료 자원과 낮은 시장 경쟁(혹은 넓은 시장)에 기인했다. 식민지에서 오는 새로운 자원들과 그러한 자원들의 활용이 높은 생산성의 증가를 가능하게 했고, 상대적으로 덜 발전된 넓은 해외 시장이 그러한 (과잉) 생산을 흡수해주었다. 그러한 생산의 이익이 국내로 흘러들어와 자본이 축적되었고 이렇게 축적된 자본을 통해 새로운 인적자원과 기술개발의 원동력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높은 성장세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은 장기채권의 발행을 통해 생산 이상의 자원을 소비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기도 했다. 문제는 정해진 시장 크기와 자원의 양 안에서 국가들간의 제로섬 게임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이런 제로섬 게임이 의외의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말하자면 각 식민지가 명목상의 독립과 자치권을 획득하게 되었는데 이런 명목상의 독립이 그동안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는 축적되는 자본을 충분히 쌓아서 후에 돌아올 빚을 갚을 만한 자산을 만들어 놓았어야 했는데, 그 자산을 만들기 위한 한 축이었던 자원 풀이 국가간 경쟁으로 인해 충분히 가용할만큼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원을 가진 기존의 식민지들은 이런 자본을 토대로 선진국의 기술을 빠르게 흡수하기 시작했고, 안그래도 좁은 시장에 강한 가격경쟁력을 앞세워 숟가락을 들이밀게 되었던 것이고. 게다가 기존 시장이었던 과거 식민국가들이 자체 기술을 개발하면서 국가주도의 내수 보호전략을 통해 국내 시장에서의 기존 선진국의 점유율을 낮추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좁아진 시장, 비싸고 희귀해진 자원, 게다가 축적된 자본을 흡수할 수 없이 충분히 비대해진 투자 시장이 현재의 문제를 초래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선개발국가들의 빚이 기본적으로는 장기적인 성장이 가능하기때문에 지금 빚을 지더라도 나중에 갚을 수 있으리라는 신용에서 나온 것인데, 그러한 신용이 비관적인 성장세로 낮아지게 되자 또다른 빚을 져서 갚았어야 할, 만기가 다 된 과거에 진 빚들이 몰려오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돌아온 빚을 계속 채권을 발행해서 -이를 양적 완화라는 은어로 표현하는데- 갚는다고 해봤자 앞으로 돌아올 빚을 계속 이렇게 갚을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면 그러한 빚이 장기적인 성장의 지속의 가능성을 반영하는 시장의 '신용'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그만큼의 성장이 실현되지 않는 한 누군가가 돈을 빌려줄 이유는 없다는 것이지. 결과적으로 이러한 문제를 획기적으로 바꿀만한 계기가 없지 않는한 지금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 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반면 신흥시장들은 낮은 가격의 자원들을 이용해 선진기술을 빠르게 흡수하며 기존의 시장에 숟가락을 내밀게 되는데 선개발국가들의 전철을 보았기 때문에 빚을 지며 내수를 부양하기보다는 흑자경영을 통해 자본 축적과 미래에 가용한 자원 확보에 열을 올리게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강력한 전제적 국가 경영이 오랫동안 지속되고, 국내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국위선양'이나 국가적 목표같은 주제를 통해 국내 정서를 진정시킨다는 것은 이제는 아침드라마의 플롯 만큼이나 진부한 이야기이다.

그럼 이것이 무엇을 이야기하는가. 이는 세대간에서도 기성 세대가 누린 번영이 후속 세대의 빚을 통해서 자신들에게 실현된 것이라는 말이다. 결국 어떤 면에서 지금의 젊은 세대들이 부모의 집에서 기식하면서 사는 것은 실은 자신들의 부가 부모세대에 이미 실현된 것이므로 자신들의 부를 누리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말하자면, 자신이 누려야 할 부가 이미 부모의 부 안에 있는 것이므로 '정당하게'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말하자면 그렇다는 거지) 결국 회사에 가서 월급을 타오나 부모 월급에서 용돈을 받으나 전 세대간 부의 양은 정해져 있으므로 그게 그거라는. 말하자면, 집에 취직했다고 하는 편이 맞을까. (먼산)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이러한 경제위기를 개척해 나아갈 방법은, 혹자는 미쳤나고 하겠지만 두 가지 정도로 압축할 수 있겠다. 첫 번째는 해저(양)개발. 선개발국가의 압도적인 기술력 - 이 해양개발이라는게 정말 고도의 기술력을 필요로 하는 분야인데다 대부분이 군수산업과 연관되어서 기술유출도 쉽지 않다 - 을 통해서 해저도시(!)를 개발하는 것이다. 그러면 넘쳐나는 토건족과 공대생들, 그리고 부족한 주택문제와 자본축적의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게다가 한국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천혜의 환경을 가지고 있는 국가로서.....(퍽) 두 번째로는 우주 개발(;;). 이것도 비슷한 맥락인데 딴지일보의 모 특집기사를 읽어보면 달이 데스스타의 외피라는 설이 있기 때문에 의외로 개발이 쉽지 않을지도. 그들의 주장에 따르자면 우리는 달의 현 거주민 대표와 달 외피개발에 대한 MOU를 먼저 체결해야 하는데.....
2012/01/28 05:02 2012/01/28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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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sumer theory를 위한 변명?

Ceteris Paribus 2011/11/22 12:25
 Dilbert.com

글쓴이의 전공에도 불구하고 경제에 대한 글이 최근 몇 년 사이에 눈을 씻고 찾아 볼래도 찾을 수 없었던 이 공간. 굳이 변명을 하자면 뭘 모르던 소시적에는 아는 게 하나만 생겨도 신나게 글을 올려제끼고 본인의 무지를 방패(?)삼아 글이 내포한 심각한 위험성을 그냥 넘어가곤 했는데, 이젠 좀 더 아는게 생기니까 쉽게 어떤 상황에 대한 주장을 하지 못하게 되었더라 정도로 변명할 수 있겠다. 어쨌든, 간만에 본인의 전공에 대한 재미없는 이야기를 또 해보려고 한다

일반적으로 consumer theory라고 한다면 많은 대학생(들과 고등학생들이) 경제 교과서를 펴면 등장하는 수요-공급의 관계를 규명하는 이론이다. 일반적으로 보았을 때, 가장 전형적인 경제학의 영역을 다루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본인이 학부생때 지도교수께서 경제학은 수요-공급으로 시작해서 수요-공급으로 끝난다고 하셨는데, 어찌보면 간단해 보이는 이 관계 안에 상당히 다양하고 복잡한 주제들을 담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교수님의 말씀에 부분적인 동의를 보내본다. 사실 수요-공급이라는 것은 소비자가 생각하는 적정 가격과 그에 따른 개인의 수요, 그리고 이를 전체적으로 총합(aggregation)한 총수요를 예측하고, 공급자도 비슷한 형태로 총공급을 예측하여 그 접점에서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는 시장청산(market clearing)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는 각 소비자와 공급자가 서로에 대한 완전한 정보를 가지고 있고, 이를 토대로 서로의 수요와 공급을 예측하여 적정 가격을 제시하는 일종의 경매상황과도 유사한 상황이 동반되는데, 이러한 부분은 학부생 및 고시생들이 배우는 기초 경제학 시간에는 거의 생략된 부분이다. 즉, 기본적으로 소비자와 공급자가 동등한 정보와 위치를 가지는 상황을 가정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는 불완전하고 비대칭적인 정보 - 소비자는 공급자의 생산비용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고, 공급자는 소비자의 수요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며 - 에서 비롯한 비대칭적인 상황 - 공급자가 (대체적으로) 우월한 상황에서 시장 가격을 결정한다 - 을 우리가 바라보고 있기에, 이러한 밑도 끝도 없이 생략된 가정에서 비롯한 이론이 많은 경제학 입문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경제학 입문자들이 아담 스미스부터 시작하는 것은 아니니)

게다가 한국의 상황은 미국의 상황보다 더욱 비대칭적인 상황인데, 이는 핸드폰 시장 하나만을 봐도 알 수 있다. 단적인 예로 애플의 아이폰을 볼 수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듯이 애플의 가장 큰 장점은 fancy한 디자인도 아니요, 하이엔드급의 기기 성능도 아닌, 소비자가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마치 잘 작동하는 것 같이 소비자에게 보여주는 소프트웨어의 부드러움에 있다. (software니까 soft하지. 이건 무슨 말장난인가 싶다.) 말하자면 소비자가 원하는 수요를 정확히 예측하고, 그에 대한 willingness to pay를 예측한 가격 산정을 통해 시장에서의 위치를 점한다. 그리고 제품군의 다양성을 최소화해서 제품군의 가격차별화를 확실하게 하고. 물론 독점적 지위와 관련해서 말이 많기는 하다만, 일단 그런 것은 제쳐두고서 볼때 경제학에서 보는 공급자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런데 한국 기업인 삼성은 일단 생산자 위주(만)의 생산을 한다. 즉, 하드웨어의 성능향상과 (상당한 부분이 인건비 착취에서 비롯되는) 비용 최소화가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아니, 소비자가 컨수머 리포트 필진도 아니고 cpu성능의 차이를 얼마나 체감하겠냐고. 오히려 하이엔드 부품 달아놓고 무겁고 비싼데다가 소프트웨어 이식이 낮아서 기기성능의 반도 제대로 체현하지 못하고 버벅거리는 삼성 핸드폰보다는 실제 성능이 느리던 빠르던 더 부드럽게 움직여주는 애플 아이폰이 더 '빠른 것처럼' 느껴진다는 거지. 그걸 캐치하지 못하고 광고 내내 애플보다 기기성능 상으로는 훨씬 좋다고 선전해봐야 그게 얼마나 먹히겠냐는 거다. 생산자가 해야하는 역할 중에 소비자의 수요를 정확하게 예측해야 하는 역할이 동반되야 시장 청산과 균형가격이 나타나는데, 그걸 못하니 계속 과공급이 생기고, 그런 과공급을 인건비 및 요소가격(하도급 부품가격) 착취로 메꾸려고 하는 상황이니 이건 뭐 멍청한 상사 덕에 부하들만 쥐어 터지는 꼴이라.

이건 뭐, 한국기업과 미국기업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문제를 이야기하려는 것 보다는, 기초적인 이론이 얼마나 강력하고 정확한 실제 경제의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는지를 말해주는 예시인거라. 말하자면 이 글은 많은 경제학에 입문하는 초년병들이 기초이론을 등한시하고 간단하게 설정된 ceteris paribus라는 '가정' 안에서의 문제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에 이런 저런 상황 설명을 해주려고 쓴 일종의 변호문인 셈이다.
2011/11/22 12:25 2011/11/22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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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re is the love?

Ceteris Paribus 2011/04/15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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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떠나오던 마지막 장면을 기억하며>

 최근 거시경제학 공부에 집중하면서 성장의 문제가 가장 첨예하며 궁극적인 목표로서의 주제로 여겨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할 것인가? 그러나 이 성장의 문제는 소비를 통한 복지의 평활화를 지속시키기 위한 하나의 우회로서의 방법론이지 궁극적으로 복지와 행복이라는 문제를 정면으로 파고든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성장의 문제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어떻게하면 달을 정확하게 가리키게 할 것인가를 문제로 삼는 것이지 달 자체에 대한 문제는 아닌 것이다. 그렇지만 달 자체를 탐구하기가 매우 애매하고 어려운 문제라 지침으로서의 의미가 있던 것이지. 그렇다면 그 손가락이 가장 좋은 지침인가? 나는 그렇지않다고 생각한다. 가능한 다른 지침들도 지금에 와서는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본다. 행복~복지~소비 라는 형태로 추론한 문제를 상정한 것은 여타 특별한 행복에 대한 광범위한 설문이나 측정의 도구가 없던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합리적인 우회로를 택한 것임에 분명하다. 그렇지만 너무 오랫동안 부정확한 우회로를 사용한 것은 아닌가를 생각해본다. 오늘날 거시경제학이 처한 제문제들 중 가장 심각한 비판은 그것이 현실적으로 정확한 예측을 줄 수 없다는 (심지어는 방향조차도 줄 수 없다는) 것인 아닌가하는 비판이다. 그리고 가장 본질적인 비판은 과연 소비가, 혹은 성장이 행복의 근원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서 온다. 이에 대한 답을 생각해보자면, 코스피 3000을 부르짖던 2007년 말의 광풍이 오늘날의 우리에게 어떤 현실로 다가왔는지를 생각해보면 그 답이 자명해 질 것이다.
 그런 생각들이 계속되던 와중에 이러한 결론에 도달했다. 행복, 혹은 복지의 정도를 측정할 수 있는 대체적인 지침으로서 '소외'를 생각할 수 없는가를 말이다. (나는 항상 '대체'라는 말을 쓸 때 마다 드는, 뭔가 모자른 듯한 이 느낌을 매우 싫어하지만) 적어도 '행복~소외받지 않음'이 '행복~복지~소비'라는 형태의 접근보다는 더욱 설득력있는 접근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면 기존의 경제학이 이끌어 온 성장과 기술진보의 문제는 어떻게 되는가? 그건, 말하자면 다른 의미로 접근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성장과 기술진보를 통해 광고에서 나오는 것처럼 '사람과 사람이 가까워지는' 모습을 이룰 수 있다면, 그것이 행복에 기여하는 것이라는 형태의 접근이 되겠지.
 극단적으로 평하자면, 요즘의 (거시)경제학에는 사람이 없다. 인적 자본이라는 형태로 사람의 역할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외관적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거기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의 관계가 전혀 없다. 혹자는 그런 것은 사회복지학에서 다루어야 할 문제이지 경제학의 문제는 아니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묻고 싶다. 그럼, 경제학은 누구를 위한 학문이냐고. (국가)경제라는 추상적이며 거대한 체계가 자체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보면서 인간이 대리만족을 느껴야하나? 당신은 지금 정권이 역대 최대 수출실적을 올리는 중이라며 팡파레를 울리는 와중에서 정말 자신이 행복해졌다고 느끼나? 난 내가 7살 무렵, 가족이 지하방에서 살면서도 매일 저녁 아버지가 과자 한봉지를 사오기를 기다리고 동생과 미래에 대한 불안 없이 장난을 치며 놀던 그 때가 가장 행복했던 시기라고 기억한다. 그렇지만, 지금의 아이들은 그런 행복에 대한 기억조차도 만들 수 없을 것 같아 불안하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자랐을 때의 미래도 더욱 걱정이고.
 아직 고민이 필요한 것 같다. 이런 생각들을 학문적으로 설득력있는 결과물로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그렇지만, 이제 경제학이 좀 더 인간 사회에서 '도발적'이며 '본질적'인 접근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은가하는 생각을 해 본다. 도대체 '사랑'은 어디에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면서.
2011/04/15 20:23 2011/04/15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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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surprising

Ceteris Paribus 2010/04/28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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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already knew that.
2010/04/28 00:21 2010/04/28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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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 다 어디가려고?

Ceteris Paribus 2009/04/29 00:51
 내일 재보궐 선거가 있다. 다행히도 본인이 속한 지역구는 특별한 재보궐 선거가 없어서 그냥 넘어가는데 동료들의 지역구에는 그렇지 않은가보다. 여간 비율상으로로 몇 석 되지 않는 국회의원과 각종 단체장 등의 선거를 놓고 전국의 신문들과 정당들이 '기싸움'을 하고있다. 하긴, 멀쩡한 선거권도 말도 안되는 이유로 제약받는 마당에 무슨 이야기를 하겠냐마는. 여간 또다시 '그들만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매번 선거가 있을 때마다 생각나는 것인데 선거 공약이 지켜지지 않는 그야말로 공수표에 불과한데 그것이 과연 어떤 설득력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궁금증이 있다. 당선자의 활동기간이 끝나고 재선을 한다거나 할 때 그 공약이 이행되었는지에 대한 공식적인 지표도 제공되지 않고, 설사 공약이 이행되지 않았다고 해도 그것을 처벌할 수 없는 것은 일종의 횡령 및 배임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대답이 나올 수 있다. 정치인의 공약은 사정에 따라 공약의 이행 가능한 물리적, 사회적 환경이 바뀔 수도 있는 것인데 그것을 일괄적으로 했냐 안했느냐를 기준으로 따질 수 있는 것이냐고. 그런데말이다. 그 양반들한테 제공되는 모든 혜택은 국민의 주머니를 털어서 나온 것이다. 일을 하라고 돈을 주었으면 그만큼 일을 했는지 확인은 해보고 평가는 내려야 되는 것 아닌가? 소위 말하는 '능력 위주의 사회'인데 말이다. 게다가 한국의 시민들은 지난 선거에서 어떤 내용들이 공약으로 내걸렸었는지 기억하는 사람도 몇 없다. 구청장 선거가 다가오면서 군소 건설업체들에 뿌리는 도급으로 4년마다 멀쩡한 동네 공원과 놀이터가 뒤집어지는데도 그때만 욕할 뿐 그것이 막상 전임 구청장의 선거지에 본인의 업적으로 둔갑되었을 때에는 그것이 멀쩡한 놀이터를 까뒤집은 것이라는 것은 기억하지 못한다.

이론적이 아닌 상식으로 생각해 보아도 자신이 어떤 이야기를 해도 처벌받지 않고 심지어는 단기적인 효용마저도 누릴 수 있다면 누구나 충분히 그러한 상황을 이용할 것이다. 그렇다면 공약이 갖는 단기적인 효용은 공약이 가지는 본질적인 존재 목표이므로 그대로 둔다고 하자. 그렇다면 소위말하는 '남발성 공약'에 대해서는 어떠한 제제조치가 필요한 것 아닌가? 다른 사람에게 돈을 벌게 해준다고 돈을 받고서 잠적하면 사기인데 다른 사람한테 이런 일을 해주마하고 월급과 특권을 얻고서는 입을 닦으면 그것도 사기가 아니냐는 말이다. 그래서 생각해 본것이 있다.

하나는 선거철에 배포되는 후보 광고지에 정치인 경력이 있다면 당시의 당선시 공약과 실제 이행의 여부를 후보자 재산 현황 및 병역 이행 여부와 마찬가지로 표로 만들어서 싣게 하는 것이다. 물론 이행여부의 증명은 후보인 측에서 선거관리 위원회 측에 할 의무를 진다. 즉, 공약이행의 증명이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에는 공약을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한다. 정치인 경력이 없다면 열외.

두번째로는 공약 불이행에 대한 책임을 금전적으로 관련 지역사회에 지게 하는 것이다. 즉, 정치인이 당선된 이후 특단의 사정이 없이 공약을 불이행할 경우 그로 인해 기대되었던 금전적 손해를 그 정치인이 선거구로 갖는 지역의 주민들로 하여금 배상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정치인의 공약 불이행도 일종의 배임 및 사기와 같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 그렇지만 누구처럼 어이없는 정책을 들고나와 공약을 지키겠다며 난리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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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GG -_-;;



2009/04/29 00:51 2009/04/29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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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한가?

Ceteris Paribus 2008/12/27 10:59
 뜬금없이 평등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과연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 평등에 대한 관념 중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그 중에서도 '결과의 평등이 아니라 기회의 평등을 보장한다'는 생각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 보고자한다.

왜 결과의 평등은 보장할 수 없는 것인가? 기회의 평등에서 결과의 평등으로 이어질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들이 같은 기회를 가지고도 같은 결과를 낼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진실로 같은 기회는 보장되는가에 대한 문제를 일단 생각해보자. 나는 그것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많은 이들에게 기회는 서로 다르게 찾아오고 또한 같은 기회가 모두에게 적어도 같은 횟수로 보장된다고 생각할 수 없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본인에게 입혀진 불평등으로 인해 같은 기회의 보장은 가능하지 않다. 그러므로 사회에서 줄창 외쳐되는 '같은 기회의 보장' 자체는 마치 사람들에게 이미 같은 기회는 보장된 것 마냥 포장하는 사회적인 호도이며 사기이다. 많은 이들이 마치 자신이 남과 같은 기회를 보장받은 것 처럼 - 초등 6년 및 중등 3년의 기본교육과 극소량의 사회보장기금으로 인해 - 착각하고 있으나 그것이 많은 이들에게 기회의 불평등의 틈을 메워주기에는 너무도 적은 양의 흙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결과적인 평등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진정한 평등을 이룩하는 길이라고 본다. 결과적인 평등을 위한 노력이 계속될 때 비로소 기회의 평등에 대한 가능성이 생겨난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 많은 이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1. 모두가 같은 결과를 받는 데에서 오는 도덕적 해이와 이로 인한 사회적 생산성 저하는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2. 다른 일에 대해 같은 결과로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과 역차별의 문제는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그에 대한 나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1. 도덕적 해이가 나타나는 현상의 근원은 일을 하는 자와 일을 시키는 자가 비대칭적인 정보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사적 정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현상을 막는 것은 부패에 대한 낮은 관대함과 공적 정의에 대한 강한 신뢰를 바탕으로 생겨난다. 사법적 질서가 정확하게 구현되고 자신의 용인으로 인해 절대 다수가 누리는 공적 이익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각인시킨다면 그러한 비대칭적인 정보로 안한 도덕적 해이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사회적 생산성 저하는 도덕적 해이로 인해 나타날 수 있지만 오히려 결과적 평등으로 인한 동기부여의 측면으로 사회적 생산성이 향상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즉, 도덕적 해이의 원천은 일을 안하는 대중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태만을 눈감아주는 (즉, 제 일을 안하는) 감독자에 있다. 그러므로 그러한 평등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강화된 형태의 도덕적 기준을 정치인 및 공직자에 적용해야 하며 사적 정보의 존재에 대한 공론화가 가능해 지기 위한 방법(내부 고발자에 대한 증인보호 등)을 모색해야 한다.

2. 과연 다른 일을 하는 데에서 오는 역차별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보다 일반 대중이 피착취로 인해 느끼는 박탈감이 더 클까?  
2008/12/27 10:59 2008/12/27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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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황

Ceteris Paribus 2008/12/14 21:29

드디어 MWG Micro를 대략 한 번 다시 훑고 Romer 영감님의 Advanced Macrro를 보고있다. 마음에 걸리는 거시를 그래도 한 번이라도 훑고가면 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랄까. 전역이 150일이 채 남지 않은 상황인데 슬슬 두려움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GRE 단어는 외우는 만큼 빠져나가고 날로 게을러지는 데다가 복학해서 여러가지 일들을 치러야 하는데 준비는 딱히 해 놓은 것이 없고.

여기서부터는 Romer 잡담. 안 보는게 나을지도

2008/12/14 21:29 2008/12/14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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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조

Ceteris Paribus 2008/11/09 02:41
내가 미국 대선에 그리 큰 관심을 가질 시간도 없거니와 관심을 갖는다고 해서 어떤 영향력이 있던 것도 아닌지라 가끔 신문에 나오는 기사들이나 보면서 시국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오바마가 당선되었다. 보아하니 시중에 이 미국 대통령 후보에 대한 책이나 기사가 엄청나게 많은 것 같다. 생각해보면 오바마는 이제 슬슬 공화당의 경찰놀이나 마블코믹스 캐릭터 놀이를 그만두고 정책입안을 할 모양이다. 뭐, 마블코믹스 캐릭터 중에도 흑인 영웅이 있긴 하지만 썩 거기에 흥미가 있는 사람 같지도 않거니와. 하여간 오바마는 다시 70년대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것 같다. 의료보험 개편, 연금제도 개편, 자국 산업 보호를 위시한 보호무역(의 가능성), 배경과 동기는 완전히 반대지만 먼로 할아범처럼 해외국가에 대한 내정 불간섭도 나올 법한데 그렇게 까지는 가지 않을 것 같다.

다만 궁금한 것은 과연 오바마가 미국에서 IT 붐 이후에 급격히 고조된 -  이미 16년이나 된, 그리고 얼마전 절정에 이른 - 미국 내부의 도덕적 해이 상태를 어떻게 극복할 지, 그 방법에 대한 것이다. 그러한 도덕적 해이가 한국에서도 '선진적 경쟁 문물'로 둔갑해 서민 경제를 상당 부분 갉아먹고 있는 시점에서 미국이 한국에게 과연 전범이 될 수 있는 정책을 제시할 것인가는 두고 볼 일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민간부문에 대한 규제에 찬성하는 사람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뿌리깊게 염두에 두는 인간의 이기심에 대한 기본 가정과  맞물린 것인데 - 나는 어쩐지 모르겠으나 - 인간의 무한한 욕구가 결정적으로 인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의 가장 큰 이유가 된다. 즉, 자유로운 인간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어떠한 제제를 가할 확률, 말하자면 적당히 해먹는 선을 지킬 확률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다. 특히나 IT 붐의 외관상의 버블은 줄어들었다고 하지만 중요한 것은 수치적 거품이 줄어들었다는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운용하는, 혹은 운용했던 자들에게 폭넓게 퍼진 기회주의와 협력의 부족이다. 말하자면 배반의 가능성이 보다 높게 형성되어 있으며, 이로 인한 손실을 높은 '한 방'으로 해결하려는 투기적 행태가 더욱 가속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행태는 종래 일부 관련 종사자들에게서 비 종사자들에게로 폭넓게 전염되었다. 덕분에 미국에 뮤츄얼 펀드 열풍이 불 수 있었고, 이를 빌미로 금융기관은 엄청난 양의 수수료를 집행하는 스위스 은행과 같은 (비도덕적) 행태를 보일 수 있었던 것이다. (스위스 은행은 이자를 주지 않고 보관료를 받는다. 다만 자금에 대한 출처를 전혀 공개하지 않는다.)

이러한 시장 전체에 확산된 불신과 배반의 가능성을 줄이고 신뢰할 수 있는 '인간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전세계적인 불황 및 금융 위기의 극복에 있어 근본이라 보인다. Secret market을 살리려면 secret이 필요한 셈이다. 이러한 '인간관계'의 회복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한국 정부는 그러한 면에서 정책의 정당성과는 별개로 완전히 실패하고 있다. 적어도 서민 및 일반 투자자 대부분에게는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 있기 때문에 - 당선 당시의 장밋빛 공상과는 반대로.  새로운 미국 행정부는 이러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신뢰할 수 있는 처벌 규정과 제한 선을 제시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적어도 10여년의 정책의 일관된 유지가 필요하다고 본다. 애초에 그러한 위험에 대한 가능성을 타개한 것이 60여년이 지난 시점 - 1930년대 대공황 - 에서 터져나온 문제인지라 특별한 제약이 없던 상태에서 소위 말하는 것처럼 'fully exploited' 된 상태이므로 그러한 제한에 익숙해져 규정이 없어진 후에도 일상화 될 시간적 여유는 대략 10여년이라고 보며 가능하다면 그러한 규정을 (영원히) 지속시켰으면 한다. 16년의 파티는 짧은 시간이 아니다. 특히 지금 금융가의 중심에 있는 자들에게는 거의 경력 초년부터 그러한 비정상적 파티가 '정상적'인 매일의 삶이었으니 다시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는 데에는 적응기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파티는 가끔 하는 것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고.

이런 잡글들을 쓰면서 느끼는 것은 역시 인간은 신뢰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믿음과 자기 규제가 없으면 인간은 예외없이 완전히 파멸한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해본다.
 
2008/11/09 02:41 2008/11/09 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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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놀이

Ceteris Paribus 2008/10/06 19:37

군인놀이를 시작한지 어느덧 1년 6개월이다. 딱 반년여 남은 군생활을 돌아보는 건 아무 의미 없을 듯 하고 (어차피 후회만 가득할테니) 현재가 어떠한지에 대해 고민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현재는 조금 우스운 상황인 것 같다. 이래저래 게을러지고 무책임해졌으니 말이다. 게다가 어째서인지는 모르겠는데 살도 엄청 쪘다. 우습긴 한데 사실이긴 하다. 다행이라면 대학원 과목을 전공 과목으로 인정해주어서 졸업 직전 학기에 대학원 거시 2개와 대학원 실해석만 들으면 운좋게 학부 학과를 마무리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나 할까. (이건 순전히 운이다)

2008/10/06 19:37 2008/10/06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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