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 동안 집착해온 진리의 존재 여부와 형태에 대한 나의 고민들이 서서히 그 끝을 보이고 있다. 나는 그동안 진리가 확실하게 존재하며 그러한 확실성에 기반한 '완전한' 형태의 진리를 찾기위하여 고민하였다. 진리의 존재 여부에 대한 증명은 이미 염두에 두고 있었던 바, 그 존재의 확실한 형태에 대해 탐구하였다. 그러나 오랜 고민과 탐구가 거듭되면 거듭 될 수록, 그러한 완전한 형태를 인간의 논리와 이성으로 찾을 수 없다는 실망과 그에 수반한 고통이 더하여져갔다.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는 진리의 형태에 대한 무의미한 집착을 계속하여갔고, 선인들의 학문 속에서 그러한 길을 발견하려하였다. 그러나 이제 이곳에 이르러 나는 그에 대한 완전한 성취가 불가능함을 실토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그것은, 나의 허황된 공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음을! 완전한 도덕과 완전한 세계의 성취는 불가능함을 이제는 실토할 수 밖에 없는 것임을. 신으로부터 받는 세계도, 나로 침잔하여 얻는 세계도, 결국은 완전한 세계가 될 수가 없음은 자명하며 그에 대한 집착이 오랜 세월 나를 고통스럽게 이끌어온 신경증과 우울의 근원이라고 입을 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불완전한 세계, 불완전한 인간. 그리고 불완전한 논리의 세계. 그 어느 것 하나도 완전히 성취할 수 없는 불완전한 세계에서 내가 찾고자 하는 것은 항상 임시적이고 불변성과 일관성이란 찾을 수 없는, 그야 말로 problem-specific한 해답지들의 모음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내가 할 것은 무엇인가. 나는 이러한 나의 상황을 반추하고 내가 해야 할 일들에 대한 우선순위를 정해야만 한다. 첫째가 될 그것은 불완전한 세계 속에서 완전함을 추구하는 데에서 오는 고통을 분담하는 것이다. 많은 인간들이 갖는 완전함에 대한 집착에서 오는 고통에 대해 완전함을 찾으려는 노력이 무의미함을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나에게 그러한 조언과 시도를 계속해왔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나는 그들과 '나는 다르다'라는 생각에 그러한 한계라고 하면 할까, 원초적 불완전성을 부정해왔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야 나에게 주어진 문제를 다시 한 번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고통은 짧고 강렬하다. 그러나 나는 만성적 불안과 내 눈앞에 보이는 불완전성을 부정하면서 삶을 진행하는 것이 도리어 '비이성적'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불완전함에 대한 깨달음을 공유해야 할 때임을 알게 되었다.
둘째는, 현실에서 부딪힌 문제들을 구체화하고 그에 대한 가장 적절하면서도 가장 임시적인(ad-hoc) 답지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결국 논리가 불완전한 세계를 기술하기 위한 시도들의 집합임을 알게 되었다면, 그에 대한 내가 접한 상황에 대한 가장 적절한, 구체적인 해답을 기술해야한다. 물론 그러한 문제들이 작은 차이에도 전혀 다른 답을 줄 수 있는, 타인들이 접한 상황과 그에 대한 해답과 일관적이지 않다고 하더라고 문제와 해답을 기술하는 것 자체가 체계 전체에 있어 그 빈틈을 메우는 좋은 시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계속 끊임없이 다른 상황과 문제가 계속 밀려오겠지만, 적어도 타인들이 나와 상당히 유사한 문제들을 겪고 그에 대한 해답을 찾는데 '사회전체'적으로 비효율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막을 수 있겠지.
오늘 이후의 시간에도 나는 끊임없이 오늘에의 결론이 적절한 전회였는지 혹은 보이지 않는 진리에 대한 졸렬한 포기인지에 대한 생각을 할 것이다. 오늘을 기점으로 전회가 시작되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것은 17살에 내가 진리를 찾아 나서겠다고 선언한 이후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나의 탐구사에서 가장 크게 선언된 전회임은 분명하다.
'NOTA BENE'에 해당되는 글 11건
해
NOTA BENE 2011/03/20 06:56Okay, Good.
NOTA BENE 2006/09/29 20:00
하지만 좋다고 말할 수도 없어서.
빗자루로 남은 상념들을 쓸어모아 작은 봉투안에 담자.
매듭을 단단히 해주었으면 좋겠어, 다시는 흘러넘치지 않게.
삐죽히 튀어나온 체념 끝에 걸린 작은 먼지 더미들 마저 깨끗이 닦고는
어제 묶은 머리를 풀어헤치고 대문 밖을 나선다.
Okay. Good.
more..
soul-escaper
NOTA BENE 2006/07/11 01:33담요를 덮은 겨울 저녁은 춥기만 하고
눌러쓴 모자는 머리통을 죈다.
손바닥을 펴 손금을 보려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내 눈에는 어떤 것도 보이지 않는다.
잠시 봐달라고 맡겨놓은 그의 아이는
창 밖을 계속 우는구나.
네가 부르는 이름은 나의 이름이냐, 네 부모의 이름이냐?
목이 가늘지는 못하나 목소리는 가늘어
책상머리에 켜 놓은 전등을 끄게 만드니.
비가 오는 날이면 네가 울어대어
나는 잠을 잘 수가 없구나.
Distorted.
NOTA BENE 2006/06/20 21:40솔직한 가사를 쓰려고, 노래를 하려고, 물을 마시려고, 혹은 죽지 않으려고.
내가 이름을 부르고 다니는 것은 누군가를 부르기 위한 것이 아니지.
절망이 따르는 곳엔, 그곳에는 삶이 따라온다고 말했지만
배고픔을 이기고 눈가에 든 다래끼를 손으로 뽑아짜려 할수록
가렵고, 눈물나고 아프고 힘들고 짜증이 나기도 하고 그에게 측은한 마음도 들어.
우유빛 물결이 넘쳐나는 그의 잔 속에는 아직 내가 남아 있을까.
Properties
NOTA BENE 2006/06/03 14:17위에서 이야기한 수학적 언어와 경제학적 관찰의 자의성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그러한 성격들을 규명하는 것은 일상적이며 평범한 많은 정리들로 채워져 있다. 대표적인 예로 소비자의 선호관계를 대수적인 관계(Relation)의 형태에서 나타나는 성격들로 정의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물론 수학적인 언어의 기술의 한계가 나타나는 경우가 수학적인 형태로 기술 할 수 있는 부분의 것들과 비교해 훨씬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는 수학에서도 전체 함수공간에서 연속적인 함수공간이 불연속한 함수공간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과 다르지 않은 원리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무리한' 잘라내기를 통해서 얻고자 하는 것은 기술의 용이성과 편리성이다. 실재하는 모든것을 언어로 기술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실재하지 않는다고는 말할 수 없지 않은가? (물론 언어실증론자들은 기술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존재함을 이야기 할 수 없다고 말하겠지만) 분석가능한 대상을 압축함으로서 언어로 기술할 수 있는 특징들만을 잡아낼 수 있고, 이로인한 학문적 토대를 세우는 것이 가능하다. (사실 그런의미에서 경제학이 사회과학이라고 하는 면에서 많은 비난을 받고있는 것같기도 하다)
(Love me) as you can
NOTA BENE 2006/05/30 23:19
그저 그대로
불리는 것이 나으리라고
빈 이야기들의 껍질들마저
잘게 바스러져버려
괜찮냐?
괜찮니?
괜찮은거야?
라고 남들이 말해도 그저
끄덕일 뿐.
수없는 두드림과 기웃거림이
차마 말도 못할만치 길게 말려올라가고
뱀 꼬리의 길이를 묻는 것 마냥이나
나의 길이를 묻는데.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고
건네지 않으면 받을 수 없으니.
용기가 없는 걸까
NOTA BENE 2005/06/22 00:45종강 이후로 집에 들어앉아서 가오가이거를 봤다.
매주 월요일 새벽 한시 반.
도쿄TV에서 하는 방송을 꾸역꾸역 보던 중에
궁금해졌다.
난 정말 용자(勇者:Braves)일까.
몇 년 전부터 붙어 있던 내 방 벽의 포스터에는
Der Kőnig stirbt nie 라고 써있다.
(굳이 풀자면 "왕은 절대 죽지 않는다"정도?)
어느새 나는 내 안에 품어둔 말조차
친한 친구에게 털어놓지 못하는 소인배가 되어가고 있다고 느꼈다.
시간이 없다.
결단이 필요하다.
나는 그렇게 나를 잊어가고 있는걸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