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상실"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1)
손가락 2006/04/04 06:37기억이 갖는 의미라. 먼저 기억이란 양면성을 지닌다. 즉, 지우고 싶다고 해서 지울 수도 없고, 또 기억하고 싶다고 해서 그렇게 잘 기억이 나지도 않는다. 즉, 우리의 통제를 벗어난 뇌의 지각활동의 일부이기에 그것을 지니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신비함과 놀라움을 자아낸다.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그 어떤 것에 대한 동경과 두려움이 그것에 대한 집착과 미련이라는 의미를 갖게 해준다. 과거에는 이것의 원인이 자연현상이었으며 그들의 환경이었다. "지구상에서 세번째로 영리한"(이 대사는 영화 "은하계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여행안내서"에서 발췌) 인간이라는 동물에게 통제불능이라는 것은 곧 공포의 대상을 의미하였다. 이는 모두가 국사책 상권에서부터 배웠듯이 애니미즘, 샤머니즘, 그리고 후대에는 통제불능한 것을 통제하는 유일신을 만들어놓고 그들을 숭배함으로서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였다. 이러한 형태의 숭배는 서양에서부터 동양에까지 널리퍼져 있었다. 17세기 중반 이전까지 기상학의 미발달로 인해 가뭄, 냉해가 여전히 신의 분노로 인식되었던 것은 비단 한국 뿐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1789년 이래로 시작된 혁명의 시대(에릭 홉스봄의 견해에 따르자면)에 인간의 지성은 여러번의 때를 벗고, 인간은 그들의 자연을 지배하던 신을 모살하려는 계획을 착착 진행시켜 나간다. 이후 익히 알려진대로 다윈은 원숭이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만방에 공포하고 프로이트를 통해서는 그 중에서도 남자라는 동물은 어머니의 젖가슴을 그리워하는 리비도 속에서 사는 심약한(?) 짐승임을 알게된다. 어찌되었든 아직도 많은 논란이 있지만 근 200여년 동안 서구의 지성계는 신의 숨구멍을 하나씩 막아가며 신을 교살 직전에 몰아넣는 데에 성공하였고, 이제 인간의 기억과 뇌는 최근 들어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인 "인지과학 Cognitive science" 의 영역으로 구분된다. 물론 인지과학 내부에서도 그 방법상의 차이는 있지만(computation의 가능여부를 둔 분파의 발생 등)그 역시 인간의 손으로 연구되는 과학의 내부로 포용되기에 이르렀다. 즉 인간과 신의 완전한 분리가 가능해진 것이다. 이제 확률적인 기억상실과 그에 또다시 확률적인 회복이 있을 수 있지만, 기껏해야 식물인간이다. 아니면 해리성 기억장애("메멘토" 같은 영화를 보라!)로 시작하여 병인의 치료는 꿈도 못꾼다. (뭐 "로렌조오일"같은 영화는 치료법을 발견하기도 하나) 우연한 질병은 주인공의 상태를 말하는 하나의 장치이고, 한국에서 처럼 멜로영화 뿐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영화에 밥먹듯 등장하는 단골코드는 되지 못하는 것 같다.
병을 소재로 한 영화라면 많지 않은가. "필라델피아 Philadephia" (덴젤 워싱턴 출연)이나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Leaving Las Vegas" (니콜라스 케이지, 엘리자베스 슈 출연)"같은 경우는 에이즈, 위에서 이미 언급한 "메멘토 Memento"(가이 피어스 출연)는 해리성 기억장애, "제 8요일 The 8th day" (주인공이 기억이 -_-;;)에서는 다운증후군이다. 이외에 언급을 하지 않아도 좋을만큼 줄줄이 많은 질병이 등장한다. 이러한 질병은 주인공의 상태를 단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표면적 장치로서 작용한다. 영화 "아이다호My own private Idaho" (리버 피닉스, 키아누 리브스 출연)에서 등장하는 주인공의 기면발작증(긴장하면 갑자기 잠이 드는 병) 등과 같이 하나의 질병(disease)가 아니라 주인공에게서만 나타나고, 그 치료법과 병인도 딱히 알 수 없는 하나의 증후군(Syndrom)의 역할을 한다. 이러한 증후군들에서 주인공은 특수한 자신의 병적 상태를 표현하는 가장 손쉬운 전달방법을 갖는 것이다. 주인공은 이러한 증후군을 치료하기위해 어떤 행위를 한다기보다는 자신의 상태에 대한 이해와 적응을 우선으로 한다. 대부분의 "병"을 소재로 한 영화는 "병"을 안고 있는 이를 하나의 병을 옮기는 "병자"로서 보기보다는 그들 자신만의 세계를 가진 특수한 인간으로 보고, 이들이 세계와 조응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