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선거공고
숨 /2005.3.19
손가락 2006/04/04 06:27 나에게 있어 무엇이 '실력'을 갖추었음을 말하는 것일까. 그저 수학문제를 좀더 잘 풀고, 경제학 시험 문제를 좀더 그럴듯한 이론으로 포장해내고, 사회학적인 에세이를 각종 수식어를 써서 제조해 낸다는 것인가. 아니면 무언가를 치열하게 생각하고 고민하고 스스로에게 묻고 대답하기를 반복하는 것인가. 나는 나 자신이 그토록 싫어했던 허위의식 속에서 20년을 살아왔다.
입으로 지성을 말하며 타인의 글에서 베낀 지식들을 써내는 것이 진정한 지식은 아닐게다. 나는 왜 지식인이 되려고 하는가. 아니, 지금 이순간부터 단순한 전문가을 넘어 사고하는 지식인이 되려고 하는가. 그것은 마치 나에게는 이렇게는 살아서는 위태롭다는 목숨의 위태로움에서 기인하는 현재의 문제의식 없이 살아온 것에 대한 반성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단순히 학점을 잘 받는 문제가 아니다. 지금 이순간 나에게 던져진 것은 삶에 대한 어떠한 반성이 있으며 그에 대한 인식이 존재하는가, 나는 나 자신에게 매순간 무엇을 묻고 무엇을 바라는가의 문제이다.
나에게 실력이라는 것은 삶에 대한 노력과 치열한 고민과 반성과 계속되는 의문의 제기이다. 진짜 힘(實力)이라고 말하지만 무엇을 진짜 힘이 되는 것이라고 말할것이냐는 말이다. 포장된 지식과 깨달음 없는 앎이란 빈 껍데기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인식만의 문제는 아니다. 앎을 실천하는 것이란 진정한 앎의 문제이다. 만약 경험도 앎이라 한다면 반성과 자기비판을 통해 얻어낸 해의 대입, 무한한 대입과 일치여부를 확인하는 것, 그것이 앎을 완성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나는 부끄럽다. 오늘 이날까지 이 깨어있지 못했던 내가 알았던 것이 세계의 전부인 줄로만 알았던 한심한 인식과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태해진 나의 몸이 부끄럽다. 나는 나의 최대의 장점이 성실과 노력임을 자랑해왔다. 무엇이 성실한 노력가의 모습이란 말인가. 나는 실로 운동을 많이 해 먹이를 잘 집어먹을 줄 아는 돼지에 불과했다.
나는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죽는 날까지. 헛되이 산 20여년의 삶을 보충하기 위해서는 죽음에 이르는 그 날까지 노력해야 한다. 나는 살아야 한다. 나는 지금 내 삶의 위태로움을 느낀다.
입으로 지성을 말하며 타인의 글에서 베낀 지식들을 써내는 것이 진정한 지식은 아닐게다. 나는 왜 지식인이 되려고 하는가. 아니, 지금 이순간부터 단순한 전문가을 넘어 사고하는 지식인이 되려고 하는가. 그것은 마치 나에게는 이렇게는 살아서는 위태롭다는 목숨의 위태로움에서 기인하는 현재의 문제의식 없이 살아온 것에 대한 반성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단순히 학점을 잘 받는 문제가 아니다. 지금 이순간 나에게 던져진 것은 삶에 대한 어떠한 반성이 있으며 그에 대한 인식이 존재하는가, 나는 나 자신에게 매순간 무엇을 묻고 무엇을 바라는가의 문제이다.
나에게 실력이라는 것은 삶에 대한 노력과 치열한 고민과 반성과 계속되는 의문의 제기이다. 진짜 힘(實力)이라고 말하지만 무엇을 진짜 힘이 되는 것이라고 말할것이냐는 말이다. 포장된 지식과 깨달음 없는 앎이란 빈 껍데기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인식만의 문제는 아니다. 앎을 실천하는 것이란 진정한 앎의 문제이다. 만약 경험도 앎이라 한다면 반성과 자기비판을 통해 얻어낸 해의 대입, 무한한 대입과 일치여부를 확인하는 것, 그것이 앎을 완성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나는 부끄럽다. 오늘 이날까지 이 깨어있지 못했던 내가 알았던 것이 세계의 전부인 줄로만 알았던 한심한 인식과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태해진 나의 몸이 부끄럽다. 나는 나의 최대의 장점이 성실과 노력임을 자랑해왔다. 무엇이 성실한 노력가의 모습이란 말인가. 나는 실로 운동을 많이 해 먹이를 잘 집어먹을 줄 아는 돼지에 불과했다.
나는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죽는 날까지. 헛되이 산 20여년의 삶을 보충하기 위해서는 죽음에 이르는 그 날까지 노력해야 한다. 나는 살아야 한다. 나는 지금 내 삶의 위태로움을 느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