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 그러니까

손가락 2011/09/14 13:20
 난 내가 훌륭한 학자가 될지는 모르겠다. 다만 요즘 느끼는 것은, 결국은 학자가 될 것 같다. 나는 어려서부터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미숙함을 빚고, 많은 실망과 고통을 겪는 일이 많았다. 다른 사람이라면 별 일 없이 지나갔을 일들도 항상 문제가 되곤했지. 다만 내가 그런 결정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그런 감정과 고통들을 글로 표현할 줄 아는 재주를 지녔기 때문인 것 같다. 어려서부터 그 흔한 비디오 게임기조차 없어 그저 하루 종일을 책을 보면서 소일 할 수 밖에 없었고 늙은 노인네들의 표현을 읽고 따라하다보니, 소위 말하는 '학교에서 먹히는' 글빨을 갖게 된 것 같다. 어려서 귀에 닳도록 들은 성경 덕분에 오만가지 비유에도 능란(?)하게 되었지. 그러다보니 성질을 낼 장소를 일기장과 원고지에서 찾게 되었고, 아둔한 동년배들을 '알아채지 못하는' 방식으로 엿먹이곤 했었다. 그리고 밖으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의 격변을 풀어놓을 곳을 글 위에서 찾게 되었다. 바로 지금처럼. 덕분에 글쓰고, 읽는 일을 어렵게 여기지 않게 된 것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다. 게다가 바로 이 블로그처럼 내 마음대로 글을 휘갈기고 휘두를 수 있는 공간까지 찾기에 이르렀지. 물론 읽는 이들에게는 다소간의 고역이 될 지 모르나.

 글, 글, 글. 결국 남는 것은 글과 생각들 뿐. 생각을 담아놓는 이 작은 그릇들 안에 얼마나 많은 순간들이 숨어있을까. 지난 글들을 되돌아 읽어보며 그 순간들의 감정들을 다시금 느껴본다. 부끄러움이 대다수를 차지하지만, 어찌하리. 지금 이런 글들을 쓰고 있는 이 순간의 감정들도 결국에는 부끄러움이 될 걸 안다. 그래도 쓴다. 끄적끄적.

 생산적인 글쓰기란 무엇일까. 블로그 초기에는 기획성의 기사들도 많이 쓰고, 나름은 편집의 형식도 갖추려 노력해보았는데, 결국은 어느 순간엔가 반쯤은 일기장이 되어버렸다. 결국 개인 블로그라는게 그런거 아닌가? 내가 여기에 내가 전공하는 evolutionary game theory 내용을 쓸 수는 없잖아? 그럼, 이 블로그는 진짜 산으로 가게 된다고. 물론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허나 그 극소수의 대다수(90%이상)은 한글을 인식조차 못하는데 수고의 필요를 못느끼는 것도 당연지사.

 솔직히, 나는 지금 극도의 슬픔과 우울을 느끼고있다. 다만 이렇게 중구난방으로 글을 쓰면서 그것들을 추스리고 있을 뿐이지. 쏟아 놓을 것은 쏟아 놓아야지. 결국 넘치게 담은 물은 넘치게 마련이니까. 망할.
2011/09/14 13:20 2011/09/14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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