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겨움과 씨름하기

손가락 2008/10/30 23:07
 다음 달이면 이제 상병도 끝물. 논산 훈련소에 입대하던 날이 어제같이 생생한데 어느새 1년 반을 넘게 군생활을 하고 올 겨울만 넘어가면 전역이다. 다만 그 1년 반은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이미 이런 이야기를 많이 푸념조로 해왔지만 한참을 컴퓨터 앞에 앉아서 다른 사람들의 블로그를 보다보면 역시 나만 정체되어 있는 군생활을 하는 것인가 하는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남는다. 같이 학교를 다니고 수업을 듣던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성과를 볼 때 느껴지는 초조함이나 절망감 따위의 감정은 말 할 필요조차도 없다. 이미 너무나 익숙해 질대로 익숙해져서 자극조차도 되지 못하는 절망감이란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그 지겨움과 고독함이란 다른 대원들과 웃고 떠든다고 잊혀지는 것이 아니다.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하고 싶다고 해도 군대라고 부르는 그 환경의 폐쇄성이 나를 억누르기 시작한다. 공부를 할 수도 있고 기타를 칠 수도 있다. 책을 볼 수도 있고 블로깅을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어떤 것에 몰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끊임없이 일이 생기고 그러한 일과 맞닥뜨리고, 그 안에서 다른 이들의 이기심과 대결해야한 하는 매일이 고통스럽다. 파도에 쓸려오는 모래 속에 내 몸이 서서히 파묻히고 있다. 이제 겨우 숨만 쉴 수 있을 정도 밖에는 남지 않았는데 그 억눌림에 익숙해져서 그것을 털고 나오기가 힘들다.

타인에게 화내고 인내심을 갖기도 힘들어 진 것은 나의 잘못이다. 이젠 어린 애들에게 무언가를 감수하기를 바라거나 바보들에게 나를 인정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불가능하다. 소통이라는 것을 이제는 포기하겠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 누구에게도 나를 건네지 않는다. 다시 나의 세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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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wang 2008/11/01 23:24 Modify/Delete Reply

    "같이 학교를 다니고 수업을 듣던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성과"
    누구? 어디? 뭐? 언제?
    난 모르겠는데.
    내 기준에 '성과'라고 함은... 음악을 만드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곡"을 하나 쓰면 그건 성과가 있는거지. 그리고 정말 좋은 곡을 썼으면 뛰어난 성과가 있는 거지. 마찬가지로 세상에 없던 녀석을 너가 만들어냈으면.. 그게 네 성과가 되는거야.
    당연히 좋은 곡을 쓰려면 적당한 재능도, 좋은 훈련도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또 전부는 아닌 것이고. 정명훈과 같은 학교를 나온 사람이 모두 정명훈처럼 된 건 아닌 것처럼.
    하루하루가 모여서 2년이 되고 그렇게 모여서 더 긴 시간이 되고 뭐 그런거지만 중요한 것은 오지도 않은 멀고 먼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희생하지도 말고 그냥 하루하루 즐겁게 살면 되는 것 같다.. 어차피 너가 만족할 만한 "성과"는 그렇게 쉽게 나오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의 삶에 무슨 객관적인 threhold가 있어서 자 요 이상쯤 되면 인생 성공이야 그렇게 얘기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갇혀 지내면서 왜 사는지 뭘 위해 사는지 어떻게 하면 한정된 인생에서 최대의 효용을 뽑아낼 것인가?(표현 맞냐?) 를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은 듯. 유학이라도 오게 되면 무슨무슨 띠오렘 렘마 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될 테니까.. --;; 김재광선생님 말씀마따나 "그래서 그때 교회 열심히 다녔습니다" 일지도 모르겠고..
    뭐.. 나도 비슷한 느낌을 경험해 본 사람으로서 이런 말들이 다 부질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지금 와서 생각해 봤을 때 이런 말을 해준 사람이 있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어서. 알다시피 내 의견은 언제나 그렇듯이 지나치게 ideal한 경향이 있긴한데 ㅋ

    • wizmith 2008/11/02 21:06 Modify/Delete

      흑. 감사합니다요. 군대라는 갇힌 곳에서 이런 저런 생각들 하다보니 성급한 마음이 들어서 그런 것 같아요. 말 그대로 myopic 해지면 안되는 건데 말이죠. 형 말씀이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요. 며칠 한참 고민하다보니 마음도 많이 다잡힌 것 같고요. 군대와서 어리광이라니 -_-;; 나이에 안맞게 말이죠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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