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버거움

손가락 2005/08/26 00:46
길다고 혹은 짧았다고 하기에도 그런 여행을 다녀왔다. 많은 사건 사고가 있었다. 그리고 많은 것을 느낀다. 나는 문득 참을 수 없는 나의 존재의 '버거움'에 대한 솔직하지 못했음을 느낀다. 나는 공고연하게 말하곤 한다. 나는 내 손으로 신을 교살했다고. 고등학교 시절 이후로 나의 머리 속에 박혀있던 생각이었고, 지금도 "도를 아시는지" 혹은 "교회 다니시냐" 는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이 되고는 하는 말이다. 하지만 어느새인가 나는 서서히 믿었던 자신에 대한 괴리감을 느껴가고 있었던 것 같다. 어딘가에 자기 자신의 실존성을 지탱하는 두 발에서 벗어나 자신을 기대어줄 어떤 다른 무엇에 의존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성. 자기 자신의 운명을 타인에게 걸고싶어 하는 바람. 이러한 모든 것들이 오늘날에 있어서의 현대인의 신관과 애정관, 혹은 그들의 생각을 이루고 있는 것 같다. "미치지 않으면 미칠 수 없다(불광불급不狂不及)"라는 말도 여기에서 나온 맥락은 아닐까.

그렇기에 모두가 자신을 어딘가에 내던지고 있다. 에리히 프롬이 말한 것과 같이 자기 자신을 어딘가에 내던지고 싶어하는 마음, 자신이 제어할 수 없는 어떤 무엇엔가로 자신을 내던지는 그러한 로맨틱한 사랑을 꿈꾸는 것이다. 혹은 신에 몰두하던지, 그도 아니라면 자신의 삶의 목표를 꿈과 이상의 정교하고 화려한 이탤릭체의 문양으로 꾸며진 양장본의 책 표지처럼 꾸미고는 그에 몰두한다.

문득 나는 나 자신이 매몰되어 가고, 스스로를 어딘가에 내던지고 싶어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긴 회한과 답답함, 그리고 참을 수 없었던 나의 자괴감마저도 나의 실존성, 스스로 서 나아가야 한다는 완전한 실존성에 대한 의지와 상반되는 감정적인 의존성과의 팽팽한 실 위에 맞닿으며 생긴 마찰음인 것을 불현듯 깨닫는다. 그러기에 긴 시간, 나의 삶에서 '사랑'과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에 대한 문제에 대하여 고민했고 방황(?)했던 것일지도.

그래서인지 지금 나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임을 외치고 싶어하는 장인의 심정을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자문한다.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임을 외친다고 해서 나에게 진정 그 무엇이 바뀌는 것일까. 지금까지 나는 그러한 욕구를 참아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억누르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정작 바뀌는 것은 없다. 나는 소리를 질러야 할까?



나는 대나무 밭의 한 가운데에 서있다.
2005/08/26 00:46 2005/08/26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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