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ckin' on Heaven's door

시간 2006/09/15 19:34
많은 사람들이 GN'R의 명곡으로 알고있는 <Knockin' on a Heaven's door>. 실은 이것도 Bob Dylan의 명곡 중의 하나이다.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인간 머리에서 그런 노래가 나오냐는 우스갯소리로 GN'R을 말할 때 등장하는 단골 메뉴중의 한 곡이다. 물론 원곡이 가지는 심오한 의미가 부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지만, 액슬이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고있으면 추한 것이 역시 아름다울 때도 있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요즘 본교에서 여성주간인가 해서 총여학생회에서 행사를 하느라 이것 저것 학교에 분홍색 플랑들을 많이도 걸어놓았다. (계간 발행되는 교지까지 분홍색이라 순간적으로 움찔했다는) 문구들이 상당히 자극적이다. 세미나 이름이 <오늘도 밝히는 하루>(왠지 이 문구는 밴드 '오! 브라더스'의  최근 앨범의 노래 중의 한 곡을 생각나게 한다), <자위, 자위, 자위 - 할수록 즐거워 지고...> 등등. 사실 남자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공개 세미나에서 한다고 한다면 어떤 해프닝이 생길지는 안봐도 파노라마. 말하자면 '총녀'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언론의 자유라 할까. 그런데 아침에 실해석 수업을 슬슬 들으러 올라가는 중에 생각해보니 그 문구들에서 내가 느낀 어색함과 말 못할 뻣뻣함이 계속 목덜미를 간지럽혔다. 다른말로 하자면, 추한 것이 (당연히) 아름답지 않을 때가 언제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추한 것이 아름답다.

역설적인 이 문구에 앞 뒤 문장을 붙여보면 그 의미가 좀 더 명확해 질 것이다.

(사회적으로) 추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아름답다.

말하자면 희소성의 미학이랄까. 이렇게 생각했다. 문제는 이런 추한 것들은 한계 효용의 감소가 극심해서 (사회적인) 아름다움보다는 지속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하게 된다. 좀 맞지는 않는 이야기 같은데 굳이 예를 들자면 혼자 있을 때에는 에로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노출을 보게되면 혀를 차는 경우라고나 할까. (요즘엔 혀를 빼고 있지 아마도) 그러한 면에서 미학관이란 시공간에 의해 좌우되는 측면이 강하다지만, 한편으로는 같은 시공간 상에서도 인간이 가진 자아의 방향 (사회적 자아인가, 혹은 개인적 자아인가) 도 강렬하게 좌우되는 측면이 있다고 하겠다.
2006/09/15 19:34 2006/09/15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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