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에 해당되는 글 13건

  1. 2009/04/06 It's time to rumble, baby.
  2. 2008/09/24 조기교육과 Signaling (2)
  3. 2008/06/26 Study of thesis
  4. 2008/05/09 뭥미?
  5. 2008/04/20 최근의 사건들1 (2)
  6. 2008/02/14 하나만 파, 하나만.
  7. 2007/03/12 '거탑'의 첨단(尖斷) (1)
  8. 2006/10/13 일가견 (1)
  9. 2006/09/30 숙성보관
  10. 2006/09/20 미시수업 (4)

It's time to rumble, baby.

손가락 2009/04/06 18:34
 근래 글이 별로 없었다. 무슨 이유를 대든 변명임은 자명하므로 쓸데없는 변론은 늘어놓지 말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 최근 근황이라면 거동이 불편하여 가만히 앉아서 GRE 따위에 매진하고 있었다는 것과 심심함을 참지 못하여 이것저것 기웃거리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음악을 하려는 생각을 그만두고 있는 장비와 연습실을 매각했다는게 최근의 가장 큰 사건이라면 사건이라고 하겠다. 이젠 정말 여유란 것이 눈에 띄게 사라져가고 있다.

근래에 텔레비전에서 여러가지 일들이 터지고 있다. 국회에서는 최저임금법을 잠정적으로 무력화하겠다는 주장도 흘러나오고 온갖 리스트에 북한 - 뭔가 더 중립적인 고유명사를 찾아보려고 했는데 쓰기에는 한계가 있다 - 이 장거리 발사체 실험을 하는 일도 있었다. 행정부 수장 - 한국에는 국가원수가 없으므로 - 이 해외순방 중에 지역 신문사에 기고했다는 논설문이 오바마 정권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묘한 기사도 있고 -  오바마 마음 움직인 'MB 기고문' 조선일보 정치 4/4 - 여간 정신없는 일들이 계속 터지고 있다. 그러는 와중에 야당의 한 정치인은 자신이 이전 총선에서 했던 발언을 노골적으로 뒤집으며 정치적 '재기'를 시도하고 있고 야당 수뇌부는 그것을 수수방관하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도대체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날까? 한국의 정치상황은 소위 말하는 지네 게임(Centipede Game)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사진 츨처 : 위키피디아 - 참고) 즉, 게임의 결말은 정해져있고, 효용의 전체 양은 정해져 있지만, 자신이 교섭권을 가진 차례에 상대방에게 극단적으로 적은 (그러나>=0인) 효용을 제시해도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그것이라도 얻는게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것과 같거나 더 나으므로 그러한 교섭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상대방에게 제의를 하지만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다음 차례에는 자신이 역으로 더 많은 효용을 가질 수 있는 - 지금 상대가 하고 있는 것과 같은 행태를 취할 수 있는 - 기회가 있으므로 그러한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나눠가지는 효용은 초반의 효용보다 극단적으로 적어진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에 (극단적인) 합리성이 추구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실험을 일반인들에게 한 경우이다. (참고) 일반인들은 이와 같은 극단적인 협상의 방법을 취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리고 상대방에게 자신보다 적은, 그렇지만 극단적이지 않은 효용의 양을 제안한다. - 6:4 라거나
7:3 이라거나) 그리고 상대방의 경우에도 턴이 계속 바뀔 경우 효용의 절대 양이 적어진다는 게임의 규칙을 알고 있으므로 그러한 제안을 적당(reasonalble)하다고 받아들인다. 즉, 자신이 가진 교섭권에 의한 절대적 우위를 요구하기보다는 상대방을 만족시킬 수 있으면서도 자신이 가진 교섭권을 이용하는 경우라고 하겠다.

과연 한국의 정치인들은 모두 극단적인 합리성을 취하는 게임의 '마인드'가 몸에 밴 사람들인가. 그런데 실험에서 게임이 극단적인 합리성을 취하는 경우를 또 다른 경우에서 볼 수 있다. 바로 자폐아들의 경우이다. 아아. 참고로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 홈페이지의 스킨 이름도 '자폐'이다. 참고 바람.
2009/04/06 18:34 2009/04/06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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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교육과 Signaling

Ceteris Paribus 2008/09/24 21:48
MWG도 이제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지금 보고 있는 Signaling & Screening, 다음 chapter인 Principle-Agent Problem이 끝나면 사실상 MWG는 다시 한 번 다 보는 셈이 된다. 물론 그 다음 부분인 General Eq. 부분과 Mechanism Design 부분은 다른 책으로 보게 될 것이다. 무려 1년이나 걸렸다. MWG 완독이라니. 여간. Signaling부분을 보고 있다. 가장 간단한 경우이므로 signaling은 생산성의 차이를 낳지 않는다고 본다.

문제는 Signaling이 없는 상태에서 모든 노동자에게 동일한 양의 봉급을 주는 것과 Signaling이 가능한 상태에서 생산성에 따라 다른 봉급을 주는 두 가지 경우(Seperating Equilibrium)에 대해 각각의 균형에서 어떻게 Pareto Improvement가 일어나는지 본다면 낮은 생산성을 가진 이들은 Signaling이 가능해지면서, signaling에 들어가는 비용의 부담이 생기므로 항상 Pareto disimproved되나 높은 생산성을 가진 노동자들은 signaling에 들어가는 비용에 따라 상대적인 improvement의 여부가 정해진다. 즉, Signaling에 드는 비용이 과다해진다면 오히려 signaling을 하지 않는 편이 상대적으로 나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signaling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입장에서 모두에게 같은 돈을 주는 (signaling이 불가능했던 경우처럼 취급하는) 경우 (Pooling Equilibrium)를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경우에는 모든 노동자에게 같은 일정 수준의 signaling을 요구하고 모두에게 같은 봉급을 주는 것인데 아예 signaling이 불가능했던 경우와 비교했을 때 회사가 얻는 생산력도 동일하며 각 노동자들이 얻는 봉급도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signaling 비용이 들어가므로 오히려 Pareto disimproved되는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signaling을 하는 경우가 equilibrium이 될 수 있는 이유는 고생산성의 노동자가 signaling을 하지 않게되어 저 생산성으로 취급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두번째 문단에서 줄 친 부분, 즉 생산성의 차이를 찾아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과도한 signaling의 비용으로 인해 사회적인 효용 수준이 Pareto disimproved 된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한국 사회가 이러한 경우의 대표적인 예인데 각종 특수 중,고등학교의 진학과 대학의 진학을 위해 signaling에 과도한 투자를 하면서 사회 전체의 부를 까먹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signaling이 유지되는 이유는 세번째 문단에서 언급한 바와 마찬가지로 signaling이 없음으로 인해 저생산성으로 취급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인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것이 오늘날의 과도한 교육열풍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2008/09/24 21:48 2008/09/24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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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y of thesis

Ceteris Paribus 2008/06/26 14:31
생각해보면 경제학을 공부하기 시작한지도 어느덧 4년이 넘어간다. 우연한 계기로 시작한 경제학을 전공으로 삼겠다고 생각하기까지 몇가지 우연들과 감사한 분들의 호의와 더 이상 좋을 수 없었던 조건의 영향이 있었다. 그리고 군복무를 하면서 과거에 했던 공부들을 정리하고 있는 지금에 와서는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무엇이 한 걸음을 나아가게 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다. 그러면서 내가 지난 시간동안 좌시했던 문제들에 왜 그렇게 선현들이 매달려왔는지에 대한 깨달음을 조금씩 얻어가고 있다. 역시 공부도 짬이 차고 볼 일이다.

최근에 가장 신경을 쓰고 있는 문제는 사회적인 합의와 최선의 문제이다. 사실 이미 60~70년대를 거치면서 소위말하는 일반균형이론으로 정리가 되긴 하였지만 그 배후에는 (1년 반 쯤 전의 포스팅에서 말했지만) 정치적인 합의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즉, 경제학이 기본적으로는 정치경제학이라는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았음을 시사하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최근의 게임이론이나 메카니즘 디자인의 문제에서도 중요한 것은 과연 무엇이 인간을 평등하게 대우하는 기준이 될 것이며 사회적인 정의와 공동선의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합의를 체계적으로 나타내는 문제이다. 과거에는 (물론 지금도 헤메지 않는 건 아니지만) 수학적인 엄밀성과 직관적인 공식의 도출에 눈을 기울였다면 지금은 그것들이 나타내는 결과를 이미 알고있기에 거기에서 출발해 가정된 체계가 무엇을 나타내는 가에 대한 문제를 바라보려 노력한다. 자유 민주주의에서 자유주의가 말하는 '좋음에 우선한 옳음'이라는 것이 어떠한 형태로 경제학적 탐구에 반영이 되었는가의 문제도 그러한 문제의 하나이며 최근의 흐름이 반영하는 진화적 형태의 동학 또한 그러한 문제의식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무엇이 극도로 다원화되고 분화된 개인들의 기준을 반영할 수 있는 원칙이 될 것인가, 혹은 그러한 개인들을 어떻게 하면 가장 평등하다고 느낄 만하게 대우해 줄 것인가의 문제를 한정된 자원의 틀에서 논의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중요한 것은 사회가 반영하고 있는 전통과 문화의 파악이다. 일전에 김영세 교수님이 수업시간에도 말씀하셨듯 경제학자가 한낱 기술자로 남아서는 안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가 밟고 있는 땅이 어떤 땅인지, 누구의 땅인지를 항상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결국에는 철학의 문제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게 결국인지 아닌지는 더 두고봐야 할 일이지만. 결국 무엇이 옳은가, 좋은가, 옳고 좋음의 기준은 무엇인가, 옳고 좋음의 기준은 어디에서 오는가의 문제들이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시작할 때 그것으로 시작하였고 그것들을 잊고 있었고, 엉뚱한 길로 온 것이 아닌가 고민했는데 결국은 그 길로 오고 있었다. Don't Be Myopic, boy.  

아. 그리고 위의 그림은 Simpsonize Me 한 그림이랍디다. 비슷한감?
2008/06/26 14:31 2008/06/26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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뭥미?

Ceteris Paribus 2008/05/09 23:14


MWG Microeconomic theory를 보는데,

....As a general matter, in gmaes in which ther can be an infinite sequence of moves, the definition of a subgame perfect Nash equilibrium remains that given in the finite horizon game : Strategies must induce a Nash Equilibrium in every subgame. Nevertheless, the lack of definite finite point of termination of the game can reduce the power of SPNE concept because we can no longer use the end of the game to pin down behavior. In which ther is always a future, a wide range of behaviors can somtimes be justified as sequentially rational (i.e., as part of an SPNE) .....  

(특히나 Reaganomics시절의) 미국인들은 밑도 끝도 없는 미래에 대한 낙관론을 이런 걸 써서 증명하려고도 했었다. 요즘에는 한국에서도 이런 식의 낙관론을 써먹으려고 하는데, 도대체 이만큼이나마 근거를 가지고는 하는지 모르겠다 (뭐, 이 근거가 현실적인 rationality를 갖는지는 번외의 문제로 하고) .  

추신 ;  아, 제가 트랙백한 원문 작성자에게 특별한 악감정이 있어서 이런 글을 쓴건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정치적 견해는 소중한 법이니까요."
2008/05/09 23:14 2008/05/09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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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사건들1

Ceteris Paribus 2008/04/20 19:02
 최근에 여러가지 일들이 많이 일어났는데 생각해보니 그것들에 대해 정리를 할 기회가 없어서 나름 정리를 해보고자 마음을 먹고 컴퓨터를 켰다.

1. 주유소 가격 인터넷 공개
2. 영화관 가격 담합
3. 뼈있는 소고기 수입 재개

정도를 정리해보고자 한다. 2번과 3번은 차차.

1. 주유소 가격 인터넷 공개

얼마 전부터 인터넷을 통해서 전국 약 60%의 주유소 가격이 공개되기 시작하였다. 지금 들어가보려고 하니 사이트 점검중이란다. 실제적인 문제는 어떻게 공개가 되고 있는지 다시 한번 논의해야겠지만 일단 상황은 이렇다. 전국의 주유소 사이트의 가격 공개가 시작되고 이러한 가격정보는 소비자와 공급자 양측에서의 접근이 모두 가능한 상황이다. 주유소 업주들은 (주유사가 아닌) 가격 공개로 인해 소비자들의 가격 압박이 심하게 있을 것이다라는 주장을 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를 쉽게 받아들이는 듯한데 실은 썩 그렇지도 않다. 일단 주유소 가격 정보가 공개되면 주유소 간의 가격 격차가 확인할 수 있는 정보가 되므로 일정 지역내의 주유소 가격들이 종래의 지역 가격차의 평균정도로 맞추어 질 것이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즉, 지역 내에서 편차가 생기던 가격차가 평준화 된다는 것이다. 일시적인 일부 업소의 가격 하락을 가져올 수 있지만 일부 저가의 업소들은 가격을 일부 올릴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인데 이러한 가격 평준화가 가격 선도의 가능성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즉, 가격이 평준화되고 그러한 가격이 공개적인 정보가 된다면 한 업체의 가격 상승에 대해 다른 업체들이 암묵적인 동조를 하면서 가격이 전체적으로 상승되는 현상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형소매업계에서도 이마트가 소위말하는 '최저 가격제' (다른데서 더 싼 거 가져오면 5000원 더준다는 식의) 를 통해서 업계 내부에서의 암묵적 가격 선도자 역할을 하는 상황을 본다면 이같은 가격 공시는 이런식의 가격 선도자 역할을 정보를 공개하고 있는 공급자 전원에게 가능하도록 해준다. 게다가 유류는 소비자에게 생필품에 가까우므로 사실상 비난을 하면서도 살 수 밖에 없으므로 소비자는 가격 결정에 사실상 영향을 미치지 않는 price taker 이다. 정부가 유류세를 인하한다고는 하지만 애초에 유류세 비율도 엄청나게 높을 뿐더러 유류세 자체가 commodity tax이므로 교과서적으로 볼때도 deadweight loss는 이미 상당하다.....결론은 정부시책으로 인해 그동안 소비자들이 암묵적으로 누리던 가격 격차에 의해 누릴 수 있던 이익도 사라져버리고 만다는 것. 정부는 주유소매상들의 암묵적 가격 담합을 사실상 허용한 것이나 다름없다.
2008/04/20 19:02 2008/04/20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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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만 파, 하나만.

손가락 2008/02/14 19:20
요즘 공부를 좀 등한시 하고 빈둥거리고 있는데 본교 교수님 홈페이지에 놀러갔다가 비보 접보.

http://www.people.fas.harvard.edu/%7Ekojima/papers.html

2006~07 2년간 13편 퍼블리싱. 그중 세편은 AER.

게다가 전공이 Mechanism design & Learning Theory.

딴 짓 하면 죽겠구나 싶다.

그저 공부나 해야지.
2008/02/14 19:20 2008/02/14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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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탑'의 첨단(尖斷)

Ceteris Paribus 2007/03/12 01:28
http://cafe233.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Yg1B&fldid=2saR&contentval=005pczzzzzzzzzzzzzzzzzzzzzzzzz
&nenc=mMBGM9n1_rJRLBVyVLfG7Q00&dataid=22420&fenc=XieqGnB4pIU0&docid=CDd8mqWX


꽤나 오랫동안 즐겨보던 드라마가 오늘 종영했다. 다들 익히들 아시겠지만 '하얀거탑'(고유명사인 바, 붙여쓰겠다는). 맨 처음에 번역된건 꽤나 오래전인 것 같았는데 (아마 내가 고등학생 때?) 한국에서 드라마로 제작한다고 해서 관심을 갖고 지금까지 지켜보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드라마를 보고있자니 10 여년이 지나는 동안 나의 가치관이 변한 것인지 혹은 드라마 작자의 의도가 개입되어 인물들에 감정 이입이 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과거와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말하자면 나는 무엇때문에 이 짓거리를 하고 있나하는 생각이었다.

내가 고등학교 때 (정확히는 고등학교 2학년 1학기 5둴 무렵) 처음으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때는 무슨생각으로 공부를 시작했는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어떤 책을 읽었고, 그로부터 내가 해야 할 것은 바로 진리를 찾는 것이라는 생각에서부터 내가 공부를 해야겠다는 결심은 시작되었다. 단순하게도 나의 목표는 오로지 '무엇이 가장 참된 길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었다. 사실 그때까지 공부를 해 본적이 없었다. 초등학교때부터 동네에서 개망나니로 소문난 건  기정사실이었고, 사실 내가 고등학교를 집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기숙사 학교로 가게 된 것도 부모들이 사고치는 자식을 '저놈의 자식, 군대나 갔다오면 정신 차리려나'하는 입장에서 였던것임을 부정할 수 없다. 과정이야 어찌되었든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조금은 (소위 말하는)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고 아주 맹목적인 목표를 가지고 대학까지 진학하게 되었다. (정작 그런데 대학 진학 과정에서는 부모가 생각하는 사람되는 과정과 내가 생각하는 사람되는 과정이 상당히 달라서 진통을 겪고, 뻘짓거리로 1년을 보내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 공부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적어도 공부라는 것을 인생의 업으로 삼기 위한 초입에 서게 되었다. 그런데 이 초입에 들어서서 길을 보게 되니 내가 상상했던 것만큼 그 길이 잘 닦인 것이 아니었다. 정확하지 않은 표지들이 사람을 헷갈리게 만들고, 정체를 알수 없는 입간판들이 서서 길가는 사람들을 유혹한다. 그리고 그러한 많은 것들이 (이제 막 초입에 들어섰을 뿐인) 여행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나는 무엇을 찾으려고 이 길을 나선 것일까? 예기치 않게 결단을 맞이한 인간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반추했다. 죽음이야 인간에게 어쩔수 없는 숙명이니 그렇다고 쳐도, 그 순간에 그는 자신에 대해 확신할 수 있는 인생을 살았는가에 대한 질문을 해보려고 한다. 무엇때문에 이 길을 가는 건가. 어줍지 않은 자기 과시와 학적 성취라는 거창한 휘장을 어깨에 달기 위해서, 혹은 자기의 후손들의 만세번영할 부귀영화를 위해서? 그 어떤 것도 금의야행(錦衣夜行)에 불과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그러한 금의(錦衣)를 남들에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 옷을 입는 자신에게 충분히 만족한 옷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2007/03/12 01:28 2007/03/12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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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가견

Ceteris Paribus 2006/10/13 17:01

나이가 조금씩 들어가면서 이른바 '정세'라는 것을 볼 줄 아는 눈이 생긴 것 같다. 소시적에 무조건 미국은 좋은쪽이고 북한은 나쁜 쪽이라는 식으로 교육받은 정서가 조금 남아있는 세대인지라 복잡한 신문 속의 이야기를 잘 알지 못했는데 (그것과 관련이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나이를 먹고 생각이 생기다 보니 조금은 그런것들에 대해 주관적인 판단을 종종 내놓곤 한다. 결국 전공이라고 말하는 경제학에서도 그런 것들이 생기게 되었다. 소시적(?)에는 그저 기술적인 부분들에 탐닉해 교과서를 답습하면서 떠받들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이제 역사를 조금 공부하고 약간의 지식과 경험들을 쌓아놓으니 과거에 배웠던 것들이 과연 그럴까하는 생각을 하게한다.

최근에는 후생경제학 부분을 공부하고 있다. 이 부분의 주요 골자라면 기존의 초기 자원 배분이 (파레토)효율적이이 못한 경우 정부(혹은 중앙기구)에 의한 인위적인 자원배분이 생긴다면 그렇게 형성된 자원 배분이 시장경제에서의 최적자원 배분과 일치한다는 주장이다. 말하자면 정부의 시장개입의 가능성을 옹호하는 부분이다. 지난 번에 일반 균형인 경우에는 중앙정부에 의한 인위적 자원배분으로 형성되는 균형이 시장에 의해 자동적으로 달성되는 시장 균형보다 열등하다는 주장을 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정부의 시장 개입을 옹호한다. 그러다보니 정부의 개입에 의해 만들어지는 공공재 시장을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경우에서 한편에서는 (정부개입에 의한) 최적배분과 시장 자체의 균형점이 결코 같아질 수 없다고 말한다. (이른바 Samuelson Theorem) 그러자 이번에는 Lendahl이라는 스웨덴인지 노르웨이 사람이 나와서 공공재에 대한 가격을 각 개인에게 다르게 매기면 (말하자면 소득에 따라 세금을 다르게 매기면) 시장균형과 정부 개입에 의한 최적 배분이 일치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정부는 공공재 생산으로부터 이윤을 갖지 말아야한다는 것도 조건의 한 부분이다. ( 실제로 이 부분부터가 내가 가장 관심있어 하는 mechanism design부분이다)

이런 이론적인 논쟁들이 80-90년대 초반까지의 (경제적인 충돌과 함께하는) 정치적인 충돌과 맥락을 같이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소비자(혹은 사회 정체 구성원)들의 최적 효용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두고 정치적인 맥락을 찾아 기술하면 그것이 곧 경제학적 논문(혹은 발견)의 기반이 된다는 사실을 볼 수 있다. 앞으로 예상해보건데 21세기에 중심이 될 경제학의 중심논쟁중의 하나는 집중화와 탈집중화의 최적 효용 달성 여부에 대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최근에는 정말 과학기술이 발전해서 주로 추상적인 공식에만 의존하던 경제학이 정말로 인간의 효용을 측정하기 시작했는데, 그런 부분은 인지과학의 한 부분으로서 갈라져 나갈 것 같고 경제학자들은 그런 결과들을 역시 잘 추상화해서 자신의 정치적인 논리를 설파하는 데에 쓰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조금 해묵긴(?)한데 맑시즘이 한번 수학적인 새 옷을 해입고서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역시 환경문제도 빼 놓을 수 없을 것이고. 여간 두고 봅시다.

2006/10/13 17:01 2006/10/13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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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성보관

Ceteris Paribus 2006/09/30 19:39
최근에 미시(2) 의 일반균형이론(General Equilibrium Theory) 부근을 공부하고 있다.  가르치는 사람도 어째서 이렇게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 수 없는 부분이라고 우스갯소리로 말할 만큼 경제학에서도 유행이 지난 부분이 바로 일반균형이론. 사실 일반 균형이론이 한창 날렸던 때는 60-70 년대, 소련과의 냉전이 한참일 당시였다. 일반 균형이론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인위적인 기구에 의해 분배되는 자원 배분보다 시장에 의해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균형이 더욱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갖가지 수학적인 도구들이 등장해서 보는 사람의 마음을 갑갑하게 하지만, 가만히 수식들을 다 걷고 바라보면 핵심은 그러한 논리이다. 즉, 인위적인 기구에 의해 형성되는 초기 부존자원 범위 내에서의 효율적인 자원 배분 범위(core) 보다는 각 소비자가 자신의 효용의 극대화하기 위해 최적화하는 편(Walrasian equilibrium)이 더 효율적인 자원배분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이다. 게다가 필요한 정보의 양에 대해서도, 인위적인 효율성을 만들기 위해서는 각 구성원의 효용구조(함수)와 총 초기부존자원, 이에 의해 주어지는 최소 효용을 모두 알아야 하지만, 후자는 그러한 것들을 필요로 하지 않고, 각 구성원이 각자의 초기부존자원과 시장 가격 (상대가격비), 각자의 효용구조만을 알면 균형상태에 도달 할 수 있기 때문에 (번외로) 더욱 효율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말하자면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종되는 경쟁시장에서의 자원배분이 중앙정부에 의해 통제되는 자원배분보다 사회 구성원 전체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일반균형이론에 덤벼들었고, 그 공로로 노벨상을 받은 인물이 Debreu, Aumann 등이다. (사실 Aumann은 게임이론으로 받았다고 하지만, 사실은 일정한 조건 아래에서 단순한 replica economy가 아니라 uncountable 한 소비자가 있는 경제에서의 시장균형의 존재성, 유일성을 증명한 것도 꽤나 알려진(?) 공적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일반균형이 그다지 이슈가 되지는 못하고 있다. 오히려 불확정성하의 의사결정이론, 게임 이론등이 더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한마디로 학문에도 유행이 있다는 말씀. 그 이유는 역시나 위에서 말했던 바와 같이, 정치적인 상황이 변했기 때문이다.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아무리 수학적인 도구를 많이 써서 중립적인 형태의 모습을 띄고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그 기반에는 세계 정세와 그것의 바탕이 되는 사상들이 그대로 녹아들어가게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상이 없는 경제학은 단순한 숫자놀음에 지나지 않는다. 경제학에서의 수학은 단순히 상황을 정량화하고 단순화하기 위한 언어의 한 가지 일뿐, 그 이상의 중립성이나 완전성을 보장하지 못한다. ( 수학이라는 체계 자체가 세계를 완전히 기술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필연적이기는 하다만) 그렇기 때문에 수학이라는 도구에 매몰되어서는 그 이면에 흐르는 거대한 흐름을 놓치게 마련인 것이다. (그렇다고 수학을 못하는게 합리화되는건 아니다) 그러므로 경제학을 공부하는 데에 역시 또하나의 거대한 축은 현실에 대한 뛰어난 직관, 사회현상에 대한 비판적인 감각과 냉철한 현실분석일 것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가장 기본적인 교육, 역사와 철학, 문학 등의 인문학을 통한 인격과 사상의 성숙일 것이다. 경제학을 공부한지 2년 반만에 원론적인 생각을 이제야 하게 되다니, 내 공부는 역시 숙성보관이 필요하다.
2006/09/30 19:39 2006/09/30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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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수업

손가락 2006/09/20 23:29
www.ibiblio.org/Dave/Dr-Fun/df9405/df940519.jpg
내일 미시(2) 수업이 있는 날이다. 며칠동안 고민하던 숙제를 구글검색으로 해결하고 (-_-) 홀가분한 마음으로 나와있다. 이번 학기 선택한 과목 중 개인적으로 가장 잘 선택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과목이 이 미시(2). 가끔 수업하는 김** 교수의 순박한 말투가 급속히 빨라지는 경향이 있지만 (긴 증명할 때) 착실한 수업스타일과 많지 않은 수강 인원이 마음에 든다.
사실 생각해보면 내가 1학년 말에 전공선택시 경제학과를 선택한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그 이유는 바로 수학을 쓰는 과목이 경제학 밖에 없어서 -_-;. 사실 통계학도 수학과목이긴 하지만 어쩐 일인지 나는 통계만 보면 고등학교 때부터 경기를 일으키는지라 (이제와서 정확히 말하자면 '확률론'을 싫어하는 것이긴 하다만) 어쩐지 통계학과는 꺼려졌다. 덕분에 2학년 이래로 수학 과목만 줄창 듣느라 정작 경제학 과목은 간신히 졸업학점이나 면할 정도 밖에는 듣지 못했다. (사실 대학원 과목을 학부 학점 과목으로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게다가 이번학기는 경제학과 과목이라고는 달랑 미시 (2). 나머지 과목들은 죄다 수학. 게다가 급기야는 수학과 사람들도 안 듣는 수리논리를 듣고 앉아있으니 당최 배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다. 여간 경제학과는 이상한 이유로 인연을 맺고 요즘에는 논문까지 끄적끄적. 내가 봐도 어이없고 유치한 논문인데 어쨋든 마무리를 지어보자고 기를 쓰고 있으니 조만간엔 결말이 나지 않을까 싶다. 어찌어찌 학위까지 해보자고 마음먹게 되었으니 앞으로야 어찌될지 알 수 없지만 전설의 고향에나 나올 법한 참으로 기이하고 가슴 아픈(?) 이야기이다.  
경제학 과목중에서도 (일전에도 n번 정도 언급한 듯 하나) 게임을 꽤나 좋아하는데 실력은 쥐뿔도 없으면서 여기저기 들이대고 있으니 문제이다. 잔뜩 모티베이션을 갖고 시작한 모델링들이 폐지조각이 되서 방안에 벽지로 여기저기 덕지 덕지 붙어있으니 참 남들이 보면 무슨 대단한 공부나 하는 줄 알겠다. 여간 혼자서 요리조리 들이대보고 씨익 알수 없는 기이한 웃음을 짓고 다니고, 술마시면서도 생전 게임이라고는 <뷰티풀 마인드>밖에 본 적이 없는 친구 녀석들한테 설명을 하고 앉아있으니 변태라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다. 학회의 한 선배는 게임을 보고 사악한 기술의 결정체라고 하는데 뭐 사실 게임이라는게 인간의 이기심을 이용하는 게 근간이니 할 말도 없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보편적) 인간의 행태연구라는 경제학의 본질 측면에서 게임만큼이나 간결하면서도 정확한 지적을 하는 분야도 딱히 드물다고 생각한다. 요즘엔 신경경제학이니 행태경제학이니 말 그대로 '과학'을 이용하는 분야들이 많은데 아직 그 정도 수준에 이르기엔 '레베루'가 아니되고, 머리 속에서 허물었다 부수는 세계를 사랑하는 연구자라고나 할까.

P.S. 최근엔 가을모기가 부쩍 늘어서 모기들의 이동 방향을 합리적으로 예측해서 최소한의 시행으로 가장 높은 성공률을 자랑하는(?) 모기 사살법을 연구하고 있다.
2006/09/20 23:29 2006/09/20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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