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태적 비일관성'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2/02/24 복지망국
  2. 2012/01/28 거시 호구의 거시

복지망국

손가락 2012/02/24 14:50

인터넷을 통해서 내가 자주보는 종류의 것들을 분류하자면 세 가지 정도로 압축되는데, 첫 번째는 연합뉴스의 글로벌 경제 기사이고 두 번째는 한국 프로야구 기사들이고 세 번째는 웹툰이다. 첫 번째 것과 나머지 것들의 차이를 굳이 따지자면 첫 번째 기사에는 댓글을 찾아보기가 힘들고 두 번째나 세 번째 것들은 기사를 보는 시간보다 댓글을 보면서 웃는 시간이 더 많다는 점 정도일 것이다.

각설하고, 그리스의 구제금융과 긴축정책 이행이 최근 글로벌 경제 파트의 핫이슈인데 가끔 한국 신문들에서 나오는 기사들을 보면 아직도 그리스가 겪고 있는 문제가 과도한 복지에서 비롯되었다는, 말하자면 복지망국의 신조들을 읊고 있는 경우가 있어서 그 문제가 사실 누구탓인지를 책임소재를 정확하게 해보자는 생각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그 원인은 당신같은 노인네들 탓이라고 하겠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기득권의 이익을 즉시적으로 볼 수 있는 정책에는 '복지'라는 이름으로 근거없는 인센티브를 남발한 문제가 크다는 것이다. 반면 장기적인 투자를 통해 국민들의 전체적 복지수준과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정책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말하자면 정책의 비효율성이 만들어는 극단적인 반례인 것이다. 뭐, 고위공무원 수당 인상하고 이미 납부된 연금납입액 보다 높은 연금배당금을 받겠다고 스스로 결정하는 게 복지제도라고 말하고 싶다면 할 수 없지. 그렇게 치면 대학 등록금 인상도 장기적으로는 교원들의 임금향상분에 기여하므로 그것도 복지정책의 일환이라고 말할 수 있을텐데 (먼산).

지난 번 포스팅한 글 - '거시호구의 거시' - 에서도 언급하였듯이, 동태적 비일관성이 이러한 재정 파탄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지적한 부분이 있다.  그 구체적인 예로서 지금의 그리스의 상황이 상당히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무엇이 동태적 비일관성이며, 그것이 어떻게 정책의 비효율성을 초래하는지를 생각해보고 조금 시간이 지나긴 했지만 작금의 복지 '포퓰리즘' 논쟁이 어떻게 논점을 흐린 물타기를 시도하는지를 이야기해보자.

논점이 일관된 정리된 글을 링크해둔다. 아래 링크의 글을 읽고 이 글을 읽는다면 이해도가 높아질 것이라 기대한다. <링크-프레시안>

1. 첫 번째, 동태적 비일관성이 어떻게 구현되었는가.

 가장 간단하게 정의하자면, 조삼모사의 상황을 생각하면 된다. 오늘 세 개인가 내일 네 개인가를 오늘 결정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오늘 네 개를 생각한다는 점이다. 게다가 그러한 문제를 결정하는 입장에서 나눠 먹어야 할 사과를 자신들의 주머니에 챙겼다는 점이다. 비유에서 벗어나 생각해보자면 국회의원들이 예산안을 짜는데, 그 예산안을 증액하면서 자신들의 판공비도 높이는 상황을 생각하면 된다. 문제는 국회의원들의 판공비가 여타 국민들의 생산성을 높이는 복지정책에 돌아가야 할 것이었고, 그러한 복지정책의 장기적 누락이 전체적인 국가 생산성의 하락을 불러오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지난번 포스팅에서도 지적하였듯, 국가부채란 미래의 국가 생산성 혹은 성장률에 대한 기대의 반영을 통해서만  유지된다. 그렇기때문에 국가부채를 돌려막는 - 영어로도 rolling한다고 하는데 - 상황을 가능하게 하려면 최소한 현재의 성장률을 부채의 만기가 형성되는 기간까지는 유지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책 결정의 권한을 가진 그리스의 정책결정권자들은 본인들이 수혜를 받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그러면서도 그 대상범위가 명목상으로는 무차별적인 정책에 많은 재정을 할애한다. 한국으로 치자면 교육 재정을 증액하면서 그 증액부분의 상당수를 외고/과고 혹은 고급 사립학교에 할당하는 식일 것이다. 그렇기때문에 명목상으로 그러한 재정 할당은 '복지'이지만 그 수혜 계층은 철저하게 일부에 국한된 형태였던 것이다. 반면 그러한 재정의 부담은 세금과 국채 발행을 통해 국민 대다수에게 분담을 시킨 것이고. 이러한 상황은 소위 말하는 '주인-대리인 문제 - Principle-Agent problem' 와도 얽혀있는데 이에 대한 언급은 추후 다른 포스팅을 통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여간 그러한 장기적인 성장률의 유지라는 전제가 노동 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복지를 통해 생산성의 향상으로 이어졌어야만 어찌되었건 증액된 재정의 부담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부채의 만기와 함께 찾아온 생산성 하락은 국채 발행을 통한 재정의 돌려막기의 가능성을 무너뜨렸다.

2. 복지 '포퓰리즘'의 물타기
 
일단은 도대체 어디서 유래했는지 모를 정체모를 외래어의 한글 표기에 비웃음을 흘릴 뿐이다. 한글 맞춤법의 '오렌지'를 무시하고 '아륀지'라고 우기시는 분들이 영어로도 한글로도 알아들을 수 없는 정체불명의 외래어를 왜 사용하시는지.

작금의 복지정책 - 정확히는 무상급식 - 이 이를 통해 대중인기에 편승하는 정책이라는 비판하는 입장인데, 문제는 그러한 복지정책의 가장 큰 수혜계층이 어디인가 하는 점이다. 물론 가정형편이 넉넉한 집 아이들까지 무상급식의 혜택을 받는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리고 이전부터 가정형편이 넉넉치 못했던 아이들이 그 수혜를 선택적으로 받고 있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러한 복지의 수혜가 전체에게 제공됨으로서 선택적 복지가 주었던 상대적 박탈감을 해소한다면 그것을 복지의 혜택이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 추상적인 이야기가 되려나.

문제는 이 복지의 수혜를 통해 일반대중의 효용증가가 생산성으로 어떻게 연결이 되는가이다. 효용의 증가가 장기적으로는 생산성의 향상을 가져온다면 이러한 생산성의 향상이 국가 성장률의 토대가 된다는 주장에는 딱히 토를 다는 사람이 없으리라 생각하고 이야기를 진행하겠다.

급식을 통해 생각해보자. 학교에서 선택적 급식을 받는 아이들은 그 존재가 어찌 되었든 다른 아이들에게 알려지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그런 아이들은 -그렇지 않을만큼 생각이 건강한 아이들도 충분히 많다고 생각하지만 - '밥 빌어먹는' 아이라는 인식을 친구들에게 주게된다. 그러한 상황은 아이들 사이에서 자신들 사이를 구분짓는 눈에 띄는 차이가 되게 마련이다. 최근의 패딩논란을 보면서 아이들이 그들 모두를 순수하게 대한다는 환상 속의 그대는 없으리라 가정하고 이야기를 계속한다. 결국 구분지어진 아이들은 학교 생활에서의 적극성을 잃게 되고 학업성취나 교우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게 될 확률이 높다. 학업 성취를 학교에서의 생산성으로 치환하자면 요즘처럼 공교육의 질 하락문제가 논란이 되는 와중에서는 그들이 사교육의 수혜를 받지 못할 확률이 더욱 높으나, 이를 감안하지 않더라도 학업성취의 저하는 대다수의 경우 피하기 힘들다. 본인의 과거 경험만으로 이야기를 한다면 그러한 사례가 있음을 더욱 강하게 인증할 수 있다.

이를 사회 전체의 생산성으로 연결지어 생각해보자. 요즘 소위 말하는 보수논객들이 '젊은이들이 꿈이 없고 도전이 없다'는 요지의 주장을 하는데 그 이유는 전적으로 전무한 사회 복지망이 그 원인이다. 즉, 보수논객들이 한창일 나이에는 실패와 재기에 대한 가능성이 충분했다. 말하자면 시골에서 빈 손으로 상경해서 실패해도 어디선가 밥은 벌어먹고 살 수 있는 분위기였다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임노동자들이 가혹한 노동조건을 강요받았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으나 사회적으로 기득권을 가진 계층이 소수였으며 사회 전체가 발전 초기단계였으므로 노동력에 대한 요구가 높았다. 그렇기때문에 취업의 가능성이 높았으며, 그러했기 때문에 허언섞인 '술마시고 면접을 보러가도 합격통지서가 날아왔다'던 자랑이 완전히 헛소리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노동계층, 특히 처음 취업을 준비하는 세대들은 술마시고 면접을 보러갔다가는 면접장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굳이 현세대가 취업 과포화 상태임을 증명할 증거들을 일일히 나열할 필요는 느끼지 못한다. 게다가 취업에 실패한 이들이 직장 밖에서 얻을 수 있는 복지의 범위는 극도로 한정되어 있다. 굳이 말하자면 기초 건강보험과 취업 교육정도. 최근 어떤 자동차 관련 전문지에서 외국의 아웃도어 인구는 대부분이 20-30대들이나 한국은 40-50대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한국의 젊은 세대들에게 자신의 인생을 사무실과 도서관에 탕진하지 말라는 요지의 기사를 보았는데, 그러한 상황에는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미국만해도 미취업 상태에서 받을 수 있는 실업수당이 최대 99개월이다. 그 액수가 적을지언정 말하자면 7-8년은 명목상 국가에서 주머니에 용돈이라도 찔러 넣어준다는 말이다. 유럽에서는 직장과 관계없이 건강보험이 일괄적용된다. 놀고 먹다가 다쳐도 병원가면 어쨌든 적은 돈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한 전후사정을 고려도 하지 않고 젊은 세대들의 '안이'와 '나태'를 탓하는 당신들은 그 나이에 얼마나 열심히 노력을 하셨는지 모르겠다. 물론 민주화와 미래 세대를 위해 자신을 투신하신 분들도 많지만 그 분들은 대부분이 고 김근태 전 의장처럼 고통속에서 여생을 보내신 분들이 대부분이다. 지금의 젊은 세대들 앞에서 병나발을 불며 안일함을 탓하는 이들의 과거가 지금 그들이 보이는 추태와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짐작한다.

갑작스런 열폭에서 벗어나 사회 안전망의 부재가 어떻게 생산성의 저하로 이어지는지 생각해보자. 한국의 경우 노동/기술집약적 산업에 산업경쟁력이 맞춰져있는데 전자제품/차량/선박 조립/생산 등이 대표적인 업종이다. 문제는 그러한 산업들의 경쟁력이 최근에는 기술, 디자인 등과 같은 요소들에 의해 좌우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요소들의 생산성은 아저씨들이 좋아하는 '창의성'의 발달과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아저씨들이 생각하는 '창의성'은 '창의성 개발 학습지'를 아이들이 잘 푸는 것으로 측정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이 정의하는 창의성은 실제의 창의성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고, 실제의 창의성은 개인 스스로가 가진 경험의 다양성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본인의 생각이다. 그렇기에 사회 안전망의 부재는 실패의 위험부담을 그대로 본인이 떠안게하여 개인이 누릴 수 있는 경험의 폭과 깊이를 심각하게 제한한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의 다양성의 부재는 창의성의 부재로, 이러한 창의성의 부재는 생산성의 부재로 이어진다.

글이 너무 장황하게 긴 길을 돌아온 느낌이 없지 않은데, 여간은 일반 대중에 대한 복지가 생산성의 향상이라는 결과와 연결될 충분한 고리를 찾는다면 복지가 망국의 지름길이라는 그 추상과 같은 호통은 동네 바보형의 외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렇기에 복지가 망국이라는 그들의 주장은 어떤 면에서는 그들의 복지에 대한 정의가 완전히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근거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일부 만이 선택적으로 정책의 효과를 독점하는 것을 독점이라고 그들이 인지한다고 가정한다면 그러한 복지가 망국의 지름길이라는 주장은 액면 그대로 맞기도 하다. 이러한 것들을 소위 말하는 주류 언론과 정당이 여과없이 흘려보내는 상황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그야 말로 한국의 언론과 정치가 얼마나 아마추어리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2012/02/24 14:50 2012/02/24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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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시 호구의 거시

Ceteris Paribus 2012/01/28 05:02
[본 글은 본인의 전공과는 전혀 무관한 거시경제에 대한 사견을 담고 있으며 학계 주류의 일반적인 상식이나 이론적 근거를 포함하는 글이 아닙니다. 참고로 전 거시는 '전혀' 모릅니다]

그래, 그놈의 글로벌 위기, 글로벌 경제. 하도 짖어대다보니 뭐가 문제인지, 뭐가 문제가 아닌지도 분간하기가 힘들어졌다. 도대체 뭐가 문제길래 이리 우왕좌왕하면서 말들만 많고 성과는 보이지 않는건가. 나오고 있는 이야기를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1. 국가 내 세대간 자원 분배의 격차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
2. 지역 간 성장 속도의 격차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

청년 실업과 관련된 레파토리들은 첫 번째 주제에 속한 이야기일 것이고, 유럽발 -이게 정말 유럽발이냐?- 금융위기에 관한 레파토리들은 두 번째 주제에 속한 이야기일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보기엔 이 두 가지 문제가 같은 원인에서 비롯한다고 본다. 그 원인은 바로 myopic time-inconsistency. 굳이 한글로 바꿔 말하자면 근시안적 동태 비일관성이랄까. 한글로 바꿔 말하니 무슨 말인지 더 모르겠다. 여간 요지는 국가나 지역 정부같은 정책 결정자들이 지속적으로 근시안적 정책을 사용했는데, 이런 정책이 시간이 변하면서 말을 바꿀 소지가 있는 문제를 낳았다는 것이다. 이 상황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한국적 은어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카드깡'. 나중에 갚기로 하고 돈을 빌려서 쓰고 아들한테도 이런 상황을 권했는데 - 이 쯤에서 오래된 모 카드사의 "아버지는 말하셨지 그걸 가져라" 라는CM이 권떠오르는 건 왜일까 -  막상 아들이 그 카드를 물려받고 보니까 계좌엔 빚만 잔뜩 있고 담보를 할만한 자산이 전혀 없는 상황인거지. 아버지 딴에서는 새로운 자산이 생기겠거니 하고 본인이 물려받은 재산을 죄다 담보잡혔는데 말이지.

비유로 돌아가보지 말고 이야기를 해보자면 이렇다. 주제를 뒤바꿔 두 번째 이야기, 지역간 성장 속도의 격차부터 풀어보자. 소위 말하는 선진국들이 과거 번영을 얻게 된 것은  (적어도 내가 보기엔) 제국주의 시절의 무한에 가까웠던 무료 자원과 낮은 시장 경쟁(혹은 넓은 시장)에 기인했다. 식민지에서 오는 새로운 자원들과 그러한 자원들의 활용이 높은 생산성의 증가를 가능하게 했고, 상대적으로 덜 발전된 넓은 해외 시장이 그러한 (과잉) 생산을 흡수해주었다. 그러한 생산의 이익이 국내로 흘러들어와 자본이 축적되었고 이렇게 축적된 자본을 통해 새로운 인적자원과 기술개발의 원동력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높은 성장세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은 장기채권의 발행을 통해 생산 이상의 자원을 소비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기도 했다. 문제는 정해진 시장 크기와 자원의 양 안에서 국가들간의 제로섬 게임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이런 제로섬 게임이 의외의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말하자면 각 식민지가 명목상의 독립과 자치권을 획득하게 되었는데 이런 명목상의 독립이 그동안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는 축적되는 자본을 충분히 쌓아서 후에 돌아올 빚을 갚을 만한 자산을 만들어 놓았어야 했는데, 그 자산을 만들기 위한 한 축이었던 자원 풀이 국가간 경쟁으로 인해 충분히 가용할만큼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원을 가진 기존의 식민지들은 이런 자본을 토대로 선진국의 기술을 빠르게 흡수하기 시작했고, 안그래도 좁은 시장에 강한 가격경쟁력을 앞세워 숟가락을 들이밀게 되었던 것이고. 게다가 기존 시장이었던 과거 식민국가들이 자체 기술을 개발하면서 국가주도의 내수 보호전략을 통해 국내 시장에서의 기존 선진국의 점유율을 낮추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좁아진 시장, 비싸고 희귀해진 자원, 게다가 축적된 자본을 흡수할 수 없이 충분히 비대해진 투자 시장이 현재의 문제를 초래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선개발국가들의 빚이 기본적으로는 장기적인 성장이 가능하기때문에 지금 빚을 지더라도 나중에 갚을 수 있으리라는 신용에서 나온 것인데, 그러한 신용이 비관적인 성장세로 낮아지게 되자 또다른 빚을 져서 갚았어야 할, 만기가 다 된 과거에 진 빚들이 몰려오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돌아온 빚을 계속 채권을 발행해서 -이를 양적 완화라는 은어로 표현하는데- 갚는다고 해봤자 앞으로 돌아올 빚을 계속 이렇게 갚을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면 그러한 빚이 장기적인 성장의 지속의 가능성을 반영하는 시장의 '신용'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그만큼의 성장이 실현되지 않는 한 누군가가 돈을 빌려줄 이유는 없다는 것이지. 결과적으로 이러한 문제를 획기적으로 바꿀만한 계기가 없지 않는한 지금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 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반면 신흥시장들은 낮은 가격의 자원들을 이용해 선진기술을 빠르게 흡수하며 기존의 시장에 숟가락을 내밀게 되는데 선개발국가들의 전철을 보았기 때문에 빚을 지며 내수를 부양하기보다는 흑자경영을 통해 자본 축적과 미래에 가용한 자원 확보에 열을 올리게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강력한 전제적 국가 경영이 오랫동안 지속되고, 국내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국위선양'이나 국가적 목표같은 주제를 통해 국내 정서를 진정시킨다는 것은 이제는 아침드라마의 플롯 만큼이나 진부한 이야기이다.

그럼 이것이 무엇을 이야기하는가. 이는 세대간에서도 기성 세대가 누린 번영이 후속 세대의 빚을 통해서 자신들에게 실현된 것이라는 말이다. 결국 어떤 면에서 지금의 젊은 세대들이 부모의 집에서 기식하면서 사는 것은 실은 자신들의 부가 부모세대에 이미 실현된 것이므로 자신들의 부를 누리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말하자면, 자신이 누려야 할 부가 이미 부모의 부 안에 있는 것이므로 '정당하게'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말하자면 그렇다는 거지) 결국 회사에 가서 월급을 타오나 부모 월급에서 용돈을 받으나 전 세대간 부의 양은 정해져 있으므로 그게 그거라는. 말하자면, 집에 취직했다고 하는 편이 맞을까. (먼산)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이러한 경제위기를 개척해 나아갈 방법은, 혹자는 미쳤나고 하겠지만 두 가지 정도로 압축할 수 있겠다. 첫 번째는 해저(양)개발. 선개발국가의 압도적인 기술력 - 이 해양개발이라는게 정말 고도의 기술력을 필요로 하는 분야인데다 대부분이 군수산업과 연관되어서 기술유출도 쉽지 않다 - 을 통해서 해저도시(!)를 개발하는 것이다. 그러면 넘쳐나는 토건족과 공대생들, 그리고 부족한 주택문제와 자본축적의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게다가 한국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천혜의 환경을 가지고 있는 국가로서.....(퍽) 두 번째로는 우주 개발(;;). 이것도 비슷한 맥락인데 딴지일보의 모 특집기사를 읽어보면 달이 데스스타의 외피라는 설이 있기 때문에 의외로 개발이 쉽지 않을지도. 그들의 주장에 따르자면 우리는 달의 현 거주민 대표와 달 외피개발에 대한 MOU를 먼저 체결해야 하는데.....
2012/01/28 05:02 2012/01/28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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