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 생각들이 계속되던 와중에 이러한 결론에 도달했다. 행복, 혹은 복지의 정도를 측정할 수 있는 대체적인 지침으로서 '소외'를 생각할 수 없는가를 말이다. (나는 항상 '대체'라는 말을 쓸 때 마다 드는, 뭔가 모자른 듯한 이 느낌을 매우 싫어하지만) 적어도 '행복~소외받지 않음'이 '행복~복지~소비'라는 형태의 접근보다는 더욱 설득력있는 접근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면 기존의 경제학이 이끌어 온 성장과 기술진보의 문제는 어떻게 되는가? 그건, 말하자면 다른 의미로 접근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성장과 기술진보를 통해 광고에서 나오는 것처럼 '사람과 사람이 가까워지는' 모습을 이룰 수 있다면, 그것이 행복에 기여하는 것이라는 형태의 접근이 되겠지.
극단적으로 평하자면, 요즘의 (거시)경제학에는 사람이 없다. 인적 자본이라는 형태로 사람의 역할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외관적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거기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의 관계가 전혀 없다. 혹자는 그런 것은 사회복지학에서 다루어야 할 문제이지 경제학의 문제는 아니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묻고 싶다. 그럼, 경제학은 누구를 위한 학문이냐고. (국가)경제라는 추상적이며 거대한 체계가 자체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보면서 인간이 대리만족을 느껴야하나? 당신은 지금 정권이 역대 최대 수출실적을 올리는 중이라며 팡파레를 울리는 와중에서 정말 자신이 행복해졌다고 느끼나? 난 내가 7살 무렵, 가족이 지하방에서 살면서도 매일 저녁 아버지가 과자 한봉지를 사오기를 기다리고 동생과 미래에 대한 불안 없이 장난을 치며 놀던 그 때가 가장 행복했던 시기라고 기억한다. 그렇지만, 지금의 아이들은 그런 행복에 대한 기억조차도 만들 수 없을 것 같아 불안하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자랐을 때의 미래도 더욱 걱정이고.
아직 고민이 필요한 것 같다. 이런 생각들을 학문적으로 설득력있는 결과물로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그렇지만, 이제 경제학이 좀 더 인간 사회에서 '도발적'이며 '본질적'인 접근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은가하는 생각을 해 본다. 도대체 '사랑'은 어디에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