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의 혁명, 진보, 방향성.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것일까. 대학을 입학했을 당시에는 명료하고 투명해 보였던 이러한 질문의 답이 조금씩 흐려지고 있다. 내가 변한 것일까, 아니면 세계가 변화한 것일까. 혹은 둘 다일까. 분명한 것은 내가 이전까지 알고 있었고, 내가 정의해왔던 이상적인 세계와 인간의 삶이 지금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다.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아니, 무엇이 틀린 것일까?
글쎄다. 몇 년 전의 나의 일기장을 보면 가득 차 있는 것은 외침이었다. 고등학교 때에는 자신에 대한 인내를 갈구하는 외침, 대학에 입학해서는 세계의 변화를 원하는 자의 외침, 혹은 자신의 삶의 질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몸부림 등이 담겨있었다. 나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나의 앎을 세계에 전파하고 이로서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 굳이 말하자면 세계를 선계(禪界)로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그랬기에 어쭙지않게 참선에 뛰어들었고 나름의 포교(?)도 실행해보았다. 말하자면 세계가 변할 수 있다고 굳게 믿어왔던 것이다. 술도 많이 마셨고 소위 말하는 대학생활의 낭만(밴드?)도 즐겼고 나름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도 많지는 않지만 한 주먹 정도는 사귀었다. 또 이상적인 인간의 삶이란 소위 말하는 사욕(邪慾)을 씻어내고 자신의 가능성에 집중하며 수련하는 삶이었다. 그리하여 모든 인간이 안분지족한 상태에서 평화를 누리는 그런 세계를 원했던 것 같다.
그런데 최근의 일기를 보면 가득 차 있는 것은 고민이다. 굳이 변화를 따지자면 손으로 쓰던 일기장이 블로그로 서서히 옮겨갔다는 데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각설하고 그런 고민들을 보면 뭔가에 부딪히고 좌절하고, 그 벽을 어떻게 뚫어야할까에 대한 궁금증에서 시작한 것들이다. 조금 살다보니 세상에는 제 멋대로 되지 않는 일들도 몇 가지 있고 그런 문제들에 대해서 나름 인간적인 고민과 동시에 학문적인 고민들도 함께 하기 시작했다. 사실 최근의 몇 년간은 이상적인 세계와 삶에 대한 생각을 한 기억이 거의 없다. 그저 눈 앞에 놓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에 시급했던 것이다. 여간 술은 많이 줄었고 대학생활의 질풍노도(?)를 함께 겪었던 친구들을 하나씩 놓아보내면서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기 시작했다. 구체적인 삶의 과정을 설계하기 시작했고 현실적인 가능성들을 따지기 시작했다. 굳이 지금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세계란 것은 좀 웃기긴 하지만 모든 인간이 합리적(=자폐적)이 되는 사회라고나 할까.
채 5년이 되지 않는 짧은(?) 기간동안 정반대로 바뀐 것 같은 나의 인식체계를 분석해보면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부분은 생겼을망정 추상적이면서도 창의적인 부분은 이제 고갈되어 버린 것 같다. 그래서인지 소설책을 봐도 내가 공부하는 학문의 잣대로 인물을 평가하고 사건을 해결하려고 한다. 도대체가 '사람'에서 점점 멀어지는 기분이다.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해도 나는 어딘가 다른 곳에 있다는 느낌이 계속 강해진다. (뭐, 그런 기분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쭉 느끼던 것이었지만) 최근에는 사람답게, 다른 사람과 소통하려고 갖은 애를 써보는데 글쎄다, 다른 이들이 보기에 집착하거나 극성인 것처럼, 혹은 떼쓰는 아이처럼 보이는 모양이다. 뭐 하긴, 정신연령은 7살 이후로 변한 게 없으니 좀 크려면 시간이 걸리려나. 그런데 이렇게 하는 건 맞는 것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