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국한탄'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08/08/06 구미호와 밥그릇
  2. 2008/07/07 원칙의 문제
  3. 2008/06/30 슬퍼지려 하기 전에 (4)
  4. 2008/05/18 시국

구미호와 밥그릇

손가락 2008/08/06 17:27
정치도 경제도 정상인 상황이 아닌 가운데 날씨는 점점 더워진다. 몸과 마음이 점점 지쳐가는 가운데 뉴스를 틀자하니 정치인들의 밥그릇 싸움이 여전하다. 왜 한국에서는 말도 안되는 정치인들의 밥그릇 싸움을 국민들이 구경해주어야만 할까? 밥그릇 싸움이 없는 곳이야 없지만 한국 정치인들의 밥그릇 싸움은 밥그릇을 갖느냐 못 갖느냐의 원초적인 생계의 문제라기 보다는 누가 밥그릇에 얹힌 비싼 반찬을 집어 먹을 것인가 하는 기만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다. 문제는 그런 반찬은 그들의 노동이나 희생의 대가가 아닌 부당한 정치적 독점에서 나오는 국민들의 잉여에 대한 착취에서 오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국민들 대다수는 밥그릇에 밥은 커녕 보리도 못 채워 먹을 정도로 힘든 보릿고개를 견뎌내고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한편 뉴스가 끝나고 어제도 여느때와 다름없이 텔레비전 드라마를 시청하였다. 전설의 고향을 보았는데 역시나 단골 래퍼토리인 '구미호'편을 방영하기에 별 생각없이 보았다. 그런데 그 구미호가 말하는 레토릭이 조금 전에 뉴스를 보면서 고민한 그러한 문제가 무엇에서 기인한 것인지를 던져주기에 한마디 보태지 않을 수 없었다.

이야기의 전체적인 설정은 구미호의 저주를 받은 가문이 이로 인한 멸문지화를 막기위해 초경이 시작된 집안의 여식들을 죽여 구미호의 발현을 막는다는 것이고 그 가문의 종손이 그러한 비극을 막고자 하였으나 실패하고 그 와중에서 발현된 구미호가 집안을 풍비박산 낼 위기에 처하나 종손 덕택(?)에 그러한 변고는 막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종손도 20년 뒤에는 같은 행위를 반복하고 있다는 그러한 반전으로 극이 마무리된다.

종손은 초중반에는 그러한 만행에 대하여 천문학의 발달로 일월성신의 움직임까지도 예측하는 마당에 그러한 미신은 믿을 수 없다고 말하며, 그러한 의식에서 희생되는 가족들의 인명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한 종손의 발언에는 인간에 대한 존귀함과 연민이 있다. 그러나 종손이 구미호의 처단을 통해 얻어진 구미호의 간과 피 등의 부속물(?)이 인간의 건강함과 장수를 누리게 한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집안의 (죽은 것으로 된) 노인들이 집안 사당에 몰래 숨어 살면서 그러한 부속물의 섭취를 통해 비정상적인 장수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20년 후에는 그러한 행위의 중심를 역시 반복하고 있다는 것은 한국 정치의 역사의식의 부족을 대변하는 듯하다. 시청 후에 오늘날의 정치 상황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겹쳐졌다.

즉, 시대의 발달에 뒤떨어지는 구태적 정치의식에 대해 격렬히 다음 세대의 중심세력이 저항하며 그러한 저항에 대한 정당성을 대가로 그들 자신이 중심세력이 되는데 성공하지만 그 자신도 과거의 구태적 행위를 통해 자신의 이익을 보전하려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자신은 자신의 이익을 보전하기 위해 역시나 과거의 중심세력이 그랬던 것처럼 이전 세대에 대한 숭배와 비밀화를 계속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이익의 보전은 집단 내부의 약자들의 일방적 희생을 대가로 유지되고 있으며 이러한 희생은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라는 형태로 계속 정당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는 어디에서 끊을 수 있을까? 그것은 다름 아닌 집단 내부의 문제제기를 통한 부당한 약탈을 근절하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극 중 대사에서도 나왔지만, 구미호의 저주는 집안 사람들이 구미호로 변한다는 불확실한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러한 미신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데에서 오는 집안 사람들의 이유없는 희생인 것이다. 그리고 정작 발현된 구미호 자체는 자신을 해치려 한 부당함에 기인하여 폭력을 행사한 것이다. 만약 그러한 행위가 없었다면 구미호의 발현이 반드시 가족들을 해치는 행위가 되었을까? 그것은 집권 세력이 만들어낸 허구적 신화이며 그러한 허구적 신화에 대한 맹목적 종용이 그들 자신을 파국으로 이끄는 자기실현적 예언이 된 것 뿐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허구적 신화에 대한 이의제기를 막지 않고 그러한 신화가 형성된 원인을 고민하여 부당한 희생을 막을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해결책이라 본다. 물론 극중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러한 희생이 집안의 부귀영화를 보전시켜준다는 식으로 성장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21세기에 이르러 문명화의 시대에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사회의 성장은 구미호 미신과 같은 허구적 행위에 의하여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노력과 준비에 의해서 시작되고 유지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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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의 문제

손가락 2008/07/07 23:44
 전세계적으로 음반시장이 불황이라고 하는 가운데 한국 음반시장이 (크지도 않은 주제에) 가장 큰 역풍을 맞고 있다고들 말이 많다. 100만장 앨범(소위 말하는 플래티넘 디스크)이 몇 장씩 출시되던 호황기도 있었으나 최근에는 50만장 (골든 디스크) 팔리는 앨범도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다. 곧 앨범발매 예정인 서태지의 지난 앨범이 대략 50만장 (2005년경) 이었고,  최근에는 20만장을 넘기면 그 해 찾아보기 힘든 대박이라고 말할 정도이니 음반시장의 불황을 말할 여지가 없다. 그나마 통화벨소리, 전화대기음 등으로 수익보전을 하고 있지만 그러한 수익의 상당 부분은 서비스 제공자(통신사)에게 돌아가고, 전곡을 판매한다는 점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실질적인 음반 판매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여간 한국의 음반시장은 가히 쑥대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과연 음반시장이 쑥대밭이 된 이유는 어디에 있는지 의견이 분분하다. 많은 사람들은 전자적 형태의 음원의 불법적 범람(MP3의 불법다운로드)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한편으로는 음반시장의 질적 하락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 두가지 의견을 종합해본다면 불법적인 형태이긴 하나 (그러한 불법적인 행위의 제제가 사실상 없는) 대체제의 가격이 상대적으로 극도로 낮아졌으며 기존 음반의 질적 수준도 떨어져 구매의사(willingness to pay)가 낮아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대체효과로 인한 수요저하와 상품의 질적 하락으로 인한 수요저하가 동시에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상 그러한 문제의 해결책은 매우 자명하다. 다만 정부의 허술한 정책이 소비자로 하여금 그러한 문제를 야기하도록 방조했을 뿐이지.

정부는 애초부터 불법적 형태의 음원사용을 막았어야 한다. 미국에서 일어난 냅스터 사건이 전세계적인 이슈가 되는 동안 미국 내에서는 전자적 형태의 음원사용에 대해 제조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추가적 입법을 진행함과 동시에 징벌적 형태의 벌금부과를 통해 불법적 음원 사용에 대한 조치를 취해 소비자들에게 음원의 불법 사용이 어떠한 측면에서든지 처벌 받을 수 있음을 분명하게 했다. 미국도 음반시장이 불황이라고는 하나 한국처럼 '막장'분위기의 불황은 아니다. 게다가 한국 음반시장은 상대적으로 외국 음반의 점유율이 낮은 폐쇄적 성격이 다분한 내수시장이라는 점에서 전세계적인 불황이 한국 음반시장에 영향을 크게 미쳤다고 하는 것은 중요성의 측면에서는 다소 어폐가 있는 지적이다. 한국에서도 유사한 경우인 소리바다의 음원 사용에 대한 불법판정은 내렸으나 전자적 음원사용에 대한 권리를 명시한 입법이 (제대로 지정되어도 있지 않았지만) 명확히 진행되지 않았고 그에 대한 처벌도 사실상 없었다. 대부분의 웹하드 업체가 음반 뿐만이 아니라 영화, 드라마와 같은 각종 미디어의 불법적 유통의 온상이 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그에 대한 규제나 처벌을 사실상 전혀 하지 않았다. 게다가 음원의 유통을 담당하는 저작권협회는 조직 내부의 이익 분배에 급급해 원제작자에게 음원 사용에 대한 보상을 제대로 하지 않았으며 밀실행정으로 벅스뮤직의 음원사용 등에 대한 정확한 입장 정리와 보상(거래)을 이루지 못했다.  

지금 음반시장은 활황은 고사하고 존립의 문제를 고민해야 할 위기에 놓여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자명하다. 음반의 사용에 대한 명확한 법적 근거 마련과 관련 법규 개정 및 제정, 이에 대한 철저한 시행. 가장 기본적인 원칙의 마련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에 대한 쉬운 답을 거부한 채 다른 곳에서 어려운 답을 찾고 있다. 마치 역대 한국의 정부지도자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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