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국한탄'에 해당되는 글 8건

  1. 2011/11/03 국치를 기억하다
  2. 2011/10/27 조심스러운 짐작
  3. 2011/10/22 Beyond the tide.
  4. 2009/02/04 합리적 판단
  5. 2008/08/06 구미호와 밥그릇
  6. 2008/07/07 원칙의 문제
  7. 2008/06/30 슬퍼지려 하기 전에 (4)
  8. 2008/05/18 시국

국치를 기억하다

손가락 2011/11/03 11:41
 한미FTA라는 것이 그동안 상당히 두루뭉술하게 설명이 되어왔다. 본질적인 잘못은 노무현 정부가 상황을 정확하게 인지하지 않은 채로 진행을 시킨 데에서 시작하겠지만, 더 큰 잘못은 현 정부가 (노무현 정부당시에도 논쟁 중이던) FTA의 몇몇 독소조항을 미국의 요구대로 그대로 받아들이고 치적용 성과를 위해 빠른 비준을 국회에 요구하면서 시작되었다고 본다. 이는 어떤 면에서 현 정부의 소위 말하는 자원외교와 맥락을 같이하는 대표적인 망국의 시책 중에 하나인데, 자원외교가 단순히 세금을 해외에 헛뿌리는 단순한 '남 좋은일'의 분류에 속한다면, 이는 단순한 남 좋은 일을 뛰어넘어 내가 '피 보는' 정책에 속한다면 면에서 망국의 치세로는 더 높은 순위에 속한다고 하겠다. (사족을 덧붙이자면 망국의 치세의 최고봉은 누가 뭐래도 4대강이요.)

 이야기가 잠시 산으로 가고 있는데 한미FTA는 지금의 상태로 체결된다면 심각한 무역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 그리고 한미FTA가 미국 정부 내에서는 연방 권고수준으로 취급되는 반면 (미국은 각 주 정부가 대부분의 주 행정에 대한 집행권을 가진다. 연방 법원 및 군사(안보)동원에 관한 특수사항이 아닌 이상 연방 정부가 주정부의 행정권한을 침범할 수 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한국에 대해서는 강제성을 동원하는 사항이 많기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형평성을 조절하지 않는 한 SOFA협정 이후 최악의 협정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 이는 단순히 경제적으로 높은 비교우위에 의한 이득을 취할 수 있는가 수준의 문제가 아닌, 국내 정책에 대한 자주성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즉, 미국이 한국 정부의 국내 정책에 대하여 FTA를 빌미로 간섭권을 사실상 갖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이다. 게다가 최혜국 대우라는, 고등학교 국사에서 강화도 조약에서 왜 강화도 조약이 불평등 조약인가를 설명할 때 맨 첫 단락에 나오는 사항을 버젓이 위치시키고는 불평등 조약이 아니라며 눈가리고 아웅하는 것은 도대체 대학 진학률이 세계 최고 수준인 국민 대다수를 상식 이하의 인간으로 취급하는 것인지. 이젠 FTA 체결하겠다고 국사교과서까지 수정하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이 상황의 국회 비준을 앞두고 국회에서의 행태는 상당히 지리멸렬을 넘어서 분노를 동반하게 한다. 먼저 집권여당은 대다수가 골수까지 친미인 자들이므로 할 말이 없다지만 본인들이 한국에서 기득권을 가지고 살고 싶다면 본인들의 기득권에 대한 '자주와 독립'마저 포기하고 싶은 자들은 기꺼이 그리하도록. 야권 제1당은 무리짓기도 못하고 타이밍을 잡는 것도 최악이지만, 이번에도 날치기를 당한다면 (뭐, 집권여당이 국회비준을 원한다면 100%겠지) 다음 선거에 대한 가망인 접는 게 좋을 지도 모르겠다. 이번에 무려 기호 10번인 무소속 후보가 당선되는 것을 보고 당신들은 뭘 느낀게 없나? 기호 2번의 힘이 사실은 별거 아니라고. 1번도 씹어먹어 버렸는데 2번은 멀쩡할 줄 아나? 어디서 깃발부대 코스프레질인지. 국민들에게 제1 야당으로 인정을 받고 싶다면 국회의사당 회의장 문에 철심을 박아서라도 막아야 할 것이다.

 미국에서 생활하고 미국에서 공부하는 나 조차도 가족과 고향을 등지고 살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비록 내가 여기서 직장을 다니고 대부분의 삶을 여기에서 보낼 것이라는 것도 예상할 수 있지만, 사람의 인지상정이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왜, 그 땅에서 사는 사람들은 그런 것을 잊고 사는 걸까? 자신들이 갖고 있는 '자주와 독립' - 비록 불완전 할지라도 - 이 소중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  
2011/11/03 11:41 2011/11/03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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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스러운 짐작

손가락 2011/10/27 10:30
 이번 보궐선거를 보고 짐작해보건데 현임 대통령은 고도의 임기 후 보신정책을 쓰고 있는 듯 하다. 일단 최근에 눈에 보이는 여러가지 행태들이 곧 임기를 마칠 대통령의 일반적인 행태라고 보여지지 않을 정도로 반 여당적이다. 심지어는 대통령이 여당의 대권 유지를 바라지 않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잠깐, 대통령이 현 여당의 대권 유지를 바라지 않는다고? 그것 참 말 되는 일이 아닌가?

 어떤 맥락에서 그런 짐작이 가능한지 짚어보자. 많은 이들이 짐작하는 바와 마찬가지로 대통령의 성향은 극도의 보신주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듯 하다. 그렇기때문에 여당과 야당이라는 틀로 이루어진, 일반적인 자기 세력에 대한 동조의식이나 동료애가 없을 수 있다. 즉, 자기 자신의 보신과 관련해서 여당과 야당의 구분이 전혀 없다고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보신의 의미에서 누가 자신의 보신에 더 나은 세력일지를 생각해보자. 일단 여당이 집권할 경우 현재로서 가장 가능성이 높은 후보는 자신에게 매우 혹독한 처벌을 내릴 수 있다. 뭐,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일단은 자신들이 전임 대통령과 얽혀있다는 오해(?)를 풀고, 꼬리를 밟힐만한 물적, 인적 증거들을 말소하겠다는 의도가 클테니까. 그리고 내부사정을 더 잘 아는 만큼 티 나지 않으면서도 치명적인 처벌이 가능할 것이고. 명분상 일단 여당 내에서 후발 집권세력이 같은 여당의 전임 집권세력을 처벌하는 경우이므로 같은 여당 내에서 처벌을 반대하기가 어렵다. 또한 같은 여당 내에서의 처벌이므로 '역사와 정의'를 바로잡는다는 매우 훌륭한 명분을 내세울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야당 또한 그러한 혹독한 처벌에 대해 가타부타 할만한 여지가 없다. 오히려 (멍청하게) 박수를 치면서 좋아하면 좋아했지.

 그런데 야당이 대권을 잡는다고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일단 처벌이 들어올 경우 여당 내부에서 임기 후의 보복성 처벌이라는 형태로 야당의 처벌에 대해 반발하는 목소리를 낼 수 있다. (말하자면 실드를 쳐 줄거란 거지) 게다가 여당 내부에 얽히고 섥힌 인사들도 대통령의 처벌과 관련에 연쇄적으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자신들에게도 피해가 올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그 처벌의 강도를 약화시킬 것이라는 말이지.

 이런 두 가지의 가능한 처벌의 시나리오를 생각해본다면 여당에서 집권을 하는 것보다는 야당에 권력을 넘겨주는 것이 본인에게 닥칠 처벌의 강도를 놓고 생각해 볼 때 더 나은 선택일 수 있다. 그렇기때문에 오히려 현 여당이 다음 대선에서 대권을 잡지 못하도록 반 여당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본인이 현재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가 아닐까 생각해보는데. 이게 사실이라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보신의 수준을 넘어선, 초인적인 형태의 개인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발상이다. 그렇다면 조금 재미있는 다음 이야기를 생각해봐야지.

 어차피 이 상태에서 대권을 넘겨받는다면 일단 현재 집권 여당에 대한 처벌은 국민 정서와 더불어 상당한 명분을 얻게된다. 물론 대통령에 대한 처벌도 어느 정도는 가능하겠지. 나라면, 내가 집권을 한다면 이런 정서를 이용해 그동안 여당이 자신들의 권력유지를 하는데 필요했던 여러 도구들(사법기관장 임면 및 대검 중수부 이용, 국가보안법 등)을 철저하게 도려내겠다. 물론 야당이 쓸 수 없다는 생각도 들겠지. 하지만 본인들이 여태까지 때리는 쪽보다는 맞는 쪽에 더 가까웠다는 점에서 쓸만한 (그리고 상당히 잔인한) 몽둥이를 하나 없애버리는 게 장기적으로는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사회정의의 구현이라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고. 그리고 부동산 및 금융관계 호적정리를 좀 해야겠지. 그 동안 집권 여당의 마르지 않는 샘이던 차명 부동산과 불법 대출을 깨끗이 정리해주는 것 역시 수순이지. 먼저 사법부 독립이 된다면 두 번째 과업은 자연스럽게 흘러가리라 본다. 뭐, 이런 것들이 정상적인 시나리오 아닐까. 그 과정에서 현임 대통령의 치부들도 자연스럽게 다시 밝혀지리라 보고. 뭐, 말하자면 자기 손을 더럽히지 않고 '중립적인' 처벌을 할 환경을 만드는 게 야당 집권 후 가장 확실한 처벌의 시나리오가 아닐까.
2011/10/27 10:30 2011/10/27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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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yond the tide.

손가락 2011/10/22 14:14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즈음의 정치시국을 보고 있노라면 말이다. 의도했던, 혹은 의도하지 않았던 하나의 잣대를 가지게 되었고, 그야말로 '홈런맞은 투수처럼' 멍하니 바라보다 다시 끌려가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니까 말이다.

나는 사실 정치판에서 누가 정의인가를 정하는 것은 그다지 의미있는 행위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기본적으로 정치라는게 특정 이익집단의 이익추구 활동이 충돌하는 상황이므로 누군가의 이익이 누군가에게는 필연적 불이익이 될 것임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나 그 이익추구 활동이 정해진 룰대로 행해지는가라는 것이 굳이 정의(justice)를 정의(define)한다면 그 기준에 좀 더 부합할 수 있겠지. 그리고 그 정해진 룰이 또 얼마나 모두가 반대하지 않고 수긍할 수 있는가도 그 기준에 포함한다면 더 좋을 것이고.

여간 사설을 빼고, 이번에는 좀 더 해볼만한 게임인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트위터니 팟캐스트니 하는 것들은 전혀 모르시는 영감님들이 팔각모를 쓰고 탑골 공원과 시청 앞 광장을 헤메시는 동안 더 많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광장에서 웃고 떠들고 조롱하고 있는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다소 그로테스크한 대비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말이다. 굳이 열광할 이유도, 그렇다고 그들을 비꼬면서 광장 밖으로 스스로를 퇴장시킬 이유도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나도 광장을 지나가는 행인1로 그 광경을 보면서 슬며시 웃음을 짓게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 웃음이 치부가 드러난 영감님들의 추잡한 '꼼꼼함'에 대한 비웃음에서 오는 것인지 혹은 소금물을 먹고 정신차린 '전직 좀비'들이 좀 더 늘어난 데에서 오는 안도감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서도. 여간 메인스트림이 아니었던 잉여 4인방이 한 의외의 정치판 벤쳐사업은 상당히 성공한 듯 하다. 물론 그들 스스로도 메인스트림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좀 더 킹메이커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만 말이다. 여간 그것만으로도 좋다. 불쏘시개가 필요했으니까, 불쏘시개를 자처한 사람들의 역할은 유쾌하게 흘러왔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문제는 이러한 감시가 '언더그라운드'가 아닌 '메인스트림'을 통해서 앞으로 유지될 수 있는가의 문제를 생각해봐야한다. 결국, 합법과 비법-불법이라고는 못하겠다-의 회색지대에서 행하는 정치행위는 대세를 바꾸기에는 그 한계가 있다. 설사, 한번의 광풍으로 일시적인 흐름을 바꾼다고 해도, 그것을 정당성을 갖춘 기구로 합법화하지 않는한은 다시 그 역풍을 맞을 수 밖에 없음을 지난 5년동안 겪지않았나. 게다가 그 역풍은 그 전보다도 지독하고도 매섭게 불어닥쳤다는 것도 알고 있고.

내가 수능을 준비할 당시에 이런 조언을 들은 적이 있다. 넌 수능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수능 이후의 면접과 논술을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고. 네가 수능에서 일정한 점수를 받는 것은 대박, 혹은 쪽박의 복권놀이가 아니라 정해진 수순에 불과하다고. 네가 생각한대로 일정한 점수를 받고, 면접과 논술까지 완전히 준비할 때 네가 원하는 대학의 진학준비가 비로소 완성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지금의 대권놀이도 이와 비슷한 것이 아닌가? 대세의 흐름은 기울고 있다. 큰 흐름의 변화가 없는한 대권의 문제는 정해진 수순으로 흘러갈 것이다. 문제는 그 이후이지. 한 번 실패해 보았으니 이젠 어디서부터 어떻게 무엇을 바로잡아야 할 지의 우선순위와 해결방안을 고민해야 할 시기이다. 불과 1년이다. 준비하고 생각한 시간이 불과 1년여 밖에 남지 않았다. 무엇이 우선 순위인지도 알 지 못하는 무력한 이론가들은 그들끼리의 순위싸움을 하도록 두고, 더 큰 흐름을 바로잡기 위한 계획을 진행시켜야 할 때이다. 한 번의 실패와 상실로 이미 충분히 고통받지 않았나?
2011/10/22 14:14 2011/10/22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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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판단

손가락 2009/02/04 21:36
 흔하게 사람들이 말하는 단어 중에 '합리'라는 단어가 있다. 물론 경제학에서야 그 합리성을 가지고 온갖 가정을 하지만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말하는 합리성에는 공통된 함의가 있는 듯 하다. 말하자면 '정상적임'을 가정하는 것 말이다.

그러한 면에서 '합리'라는 것은 두 가지의 겹치기도 하지만 상충 가능한 의미를 내포할 수 있다. 즉, '이익(利)에 부합(合)하는가' 혹은 '이치(理)에 부합하는가' 라는 두 가지 의미들이다. 일반적으로 경제학에서 말하는 합리성이란 전자에 가까운 것인 반면에 일반적인 의미의 - 위에서 언급한 '정상적인' - 합리성이라는 후자에 가까운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목적이 상충할 때 선택되는 것은 대개의 경우에는 전자라고 본다. (물론 이것은 과하게 경제학적 가정에 호도된 본인의 가정이다) 그러나 요즘 웅크리고 앉아 밖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 두 가지를 섞거나 혹은 어느 하나로 다른 것을 가려 무엇이 실체인지를 헛갈리게 하려는 행태가 눈에 띈다. 물론 이전에도 그것은 빈번하게 사용되던 책략이자 술수였지만 무엇이든지간에 참을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은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선거에서는 어떤 사람을 뽑는 것에 무게를 두어야 할까? 많은 사람들은 당연하게 후자를 이야기하지만 실은 전자를 선택하게 마련이다. 그것이 잘못된 것이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이상한 질문이다. 왜냐하면 옳은 것이 대안적 선택지인 선택에서 그것이 아닌 것을 선택하는 것은 옳은 것과는 상관 없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지 잘못된 것을 선택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여간 옳은 것과는 상관이 없는 것을 선택한 마당에서 과연 그 선택이 '합리(合利)'적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상황 1.  .....정부가 최근 미래 성장 및 일자리 창출과 관련된 대책을 잇달아 쏟아내고 있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와 미래기획위원회는 13일 신재생에너지와 로봇 등 17개 미래 첨단 분야에 97조여원을 투자, 10년간 352만개의 일자리를 만드는 내용의 '신(新)성장동력 비전 및 발전전략'을 발표했다..... (2009.1.14. 조선일보 정치면)

상황 2. 이명박 대통령이 4일 과천 정부청사를 전격 방문해....온라인 게임은 우리가 잘하는데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같이 개발된 크리에이티브한(창의적인) 제품은 소니, 닌텐도가 앞서가는 게 사실”이라며 “닌텐도 게임기를 우리 초등학생들이 많이 갖고 있는데 이런 것을 개발할 수 없느냐”고 국산화 필요성을 지적하기도 ....

물론 합리(合理)의 의미로 선택을 하셨다면 그 분은 열외.
2009/02/04 21:36 2009/02/04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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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호와 밥그릇

손가락 2008/08/06 17:27
정치도 경제도 정상인 상황이 아닌 가운데 날씨는 점점 더워진다. 몸과 마음이 점점 지쳐가는 가운데 뉴스를 틀자하니 정치인들의 밥그릇 싸움이 여전하다. 왜 한국에서는 말도 안되는 정치인들의 밥그릇 싸움을 국민들이 구경해주어야만 할까? 밥그릇 싸움이 없는 곳이야 없지만 한국 정치인들의 밥그릇 싸움은 밥그릇을 갖느냐 못 갖느냐의 원초적인 생계의 문제라기 보다는 누가 밥그릇에 얹힌 비싼 반찬을 집어 먹을 것인가 하는 기만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다. 문제는 그런 반찬은 그들의 노동이나 희생의 대가가 아닌 부당한 정치적 독점에서 나오는 국민들의 잉여에 대한 착취에서 오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국민들 대다수는 밥그릇에 밥은 커녕 보리도 못 채워 먹을 정도로 힘든 보릿고개를 견뎌내고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한편 뉴스가 끝나고 어제도 여느때와 다름없이 텔레비전 드라마를 시청하였다. 전설의 고향을 보았는데 역시나 단골 래퍼토리인 '구미호'편을 방영하기에 별 생각없이 보았다. 그런데 그 구미호가 말하는 레토릭이 조금 전에 뉴스를 보면서 고민한 그러한 문제가 무엇에서 기인한 것인지를 던져주기에 한마디 보태지 않을 수 없었다.

이야기의 전체적인 설정은 구미호의 저주를 받은 가문이 이로 인한 멸문지화를 막기위해 초경이 시작된 집안의 여식들을 죽여 구미호의 발현을 막는다는 것이고 그 가문의 종손이 그러한 비극을 막고자 하였으나 실패하고 그 와중에서 발현된 구미호가 집안을 풍비박산 낼 위기에 처하나 종손 덕택(?)에 그러한 변고는 막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종손도 20년 뒤에는 같은 행위를 반복하고 있다는 그러한 반전으로 극이 마무리된다.

종손은 초중반에는 그러한 만행에 대하여 천문학의 발달로 일월성신의 움직임까지도 예측하는 마당에 그러한 미신은 믿을 수 없다고 말하며, 그러한 의식에서 희생되는 가족들의 인명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한 종손의 발언에는 인간에 대한 존귀함과 연민이 있다. 그러나 종손이 구미호의 처단을 통해 얻어진 구미호의 간과 피 등의 부속물(?)이 인간의 건강함과 장수를 누리게 한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집안의 (죽은 것으로 된) 노인들이 집안 사당에 몰래 숨어 살면서 그러한 부속물의 섭취를 통해 비정상적인 장수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20년 후에는 그러한 행위의 중심를 역시 반복하고 있다는 것은 한국 정치의 역사의식의 부족을 대변하는 듯하다. 시청 후에 오늘날의 정치 상황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겹쳐졌다.

즉, 시대의 발달에 뒤떨어지는 구태적 정치의식에 대해 격렬히 다음 세대의 중심세력이 저항하며 그러한 저항에 대한 정당성을 대가로 그들 자신이 중심세력이 되는데 성공하지만 그 자신도 과거의 구태적 행위를 통해 자신의 이익을 보전하려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자신은 자신의 이익을 보전하기 위해 역시나 과거의 중심세력이 그랬던 것처럼 이전 세대에 대한 숭배와 비밀화를 계속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이익의 보전은 집단 내부의 약자들의 일방적 희생을 대가로 유지되고 있으며 이러한 희생은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라는 형태로 계속 정당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는 어디에서 끊을 수 있을까? 그것은 다름 아닌 집단 내부의 문제제기를 통한 부당한 약탈을 근절하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극 중 대사에서도 나왔지만, 구미호의 저주는 집안 사람들이 구미호로 변한다는 불확실한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러한 미신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데에서 오는 집안 사람들의 이유없는 희생인 것이다. 그리고 정작 발현된 구미호 자체는 자신을 해치려 한 부당함에 기인하여 폭력을 행사한 것이다. 만약 그러한 행위가 없었다면 구미호의 발현이 반드시 가족들을 해치는 행위가 되었을까? 그것은 집권 세력이 만들어낸 허구적 신화이며 그러한 허구적 신화에 대한 맹목적 종용이 그들 자신을 파국으로 이끄는 자기실현적 예언이 된 것 뿐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허구적 신화에 대한 이의제기를 막지 않고 그러한 신화가 형성된 원인을 고민하여 부당한 희생을 막을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해결책이라 본다. 물론 극중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러한 희생이 집안의 부귀영화를 보전시켜준다는 식으로 성장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21세기에 이르러 문명화의 시대에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사회의 성장은 구미호 미신과 같은 허구적 행위에 의하여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노력과 준비에 의해서 시작되고 유지된다는 것을.
2008/08/06 17:27 2008/08/06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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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의 문제

손가락 2008/07/07 23:44
 전세계적으로 음반시장이 불황이라고 하는 가운데 한국 음반시장이 (크지도 않은 주제에) 가장 큰 역풍을 맞고 있다고들 말이 많다. 100만장 앨범(소위 말하는 플래티넘 디스크)이 몇 장씩 출시되던 호황기도 있었으나 최근에는 50만장 (골든 디스크) 팔리는 앨범도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다. 곧 앨범발매 예정인 서태지의 지난 앨범이 대략 50만장 (2005년경) 이었고,  최근에는 20만장을 넘기면 그 해 찾아보기 힘든 대박이라고 말할 정도이니 음반시장의 불황을 말할 여지가 없다. 그나마 통화벨소리, 전화대기음 등으로 수익보전을 하고 있지만 그러한 수익의 상당 부분은 서비스 제공자(통신사)에게 돌아가고, 전곡을 판매한다는 점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실질적인 음반 판매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여간 한국의 음반시장은 가히 쑥대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과연 음반시장이 쑥대밭이 된 이유는 어디에 있는지 의견이 분분하다. 많은 사람들은 전자적 형태의 음원의 불법적 범람(MP3의 불법다운로드)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한편으로는 음반시장의 질적 하락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 두가지 의견을 종합해본다면 불법적인 형태이긴 하나 (그러한 불법적인 행위의 제제가 사실상 없는) 대체제의 가격이 상대적으로 극도로 낮아졌으며 기존 음반의 질적 수준도 떨어져 구매의사(willingness to pay)가 낮아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대체효과로 인한 수요저하와 상품의 질적 하락으로 인한 수요저하가 동시에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상 그러한 문제의 해결책은 매우 자명하다. 다만 정부의 허술한 정책이 소비자로 하여금 그러한 문제를 야기하도록 방조했을 뿐이지.

정부는 애초부터 불법적 형태의 음원사용을 막았어야 한다. 미국에서 일어난 냅스터 사건이 전세계적인 이슈가 되는 동안 미국 내에서는 전자적 형태의 음원사용에 대해 제조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추가적 입법을 진행함과 동시에 징벌적 형태의 벌금부과를 통해 불법적 음원 사용에 대한 조치를 취해 소비자들에게 음원의 불법 사용이 어떠한 측면에서든지 처벌 받을 수 있음을 분명하게 했다. 미국도 음반시장이 불황이라고는 하나 한국처럼 '막장'분위기의 불황은 아니다. 게다가 한국 음반시장은 상대적으로 외국 음반의 점유율이 낮은 폐쇄적 성격이 다분한 내수시장이라는 점에서 전세계적인 불황이 한국 음반시장에 영향을 크게 미쳤다고 하는 것은 중요성의 측면에서는 다소 어폐가 있는 지적이다. 한국에서도 유사한 경우인 소리바다의 음원 사용에 대한 불법판정은 내렸으나 전자적 음원사용에 대한 권리를 명시한 입법이 (제대로 지정되어도 있지 않았지만) 명확히 진행되지 않았고 그에 대한 처벌도 사실상 없었다. 대부분의 웹하드 업체가 음반 뿐만이 아니라 영화, 드라마와 같은 각종 미디어의 불법적 유통의 온상이 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그에 대한 규제나 처벌을 사실상 전혀 하지 않았다. 게다가 음원의 유통을 담당하는 저작권협회는 조직 내부의 이익 분배에 급급해 원제작자에게 음원 사용에 대한 보상을 제대로 하지 않았으며 밀실행정으로 벅스뮤직의 음원사용 등에 대한 정확한 입장 정리와 보상(거래)을 이루지 못했다.  

지금 음반시장은 활황은 고사하고 존립의 문제를 고민해야 할 위기에 놓여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자명하다. 음반의 사용에 대한 명확한 법적 근거 마련과 관련 법규 개정 및 제정, 이에 대한 철저한 시행. 가장 기본적인 원칙의 마련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에 대한 쉬운 답을 거부한 채 다른 곳에서 어려운 답을 찾고 있다. 마치 역대 한국의 정부지도자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2008/07/07 23:44 2008/07/07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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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퍼지려 하기 전에

손가락 2008/06/30 23:03
 어떻게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과 그것이 논리적으로 옳은가의 연관성의 문제는 언뜻보면 당연한 것 같이 보이지만 실은 어떤 관계도 없다. 전자는 당위적인 옳음의 문제이며 후자는 주장이 뒷받침 되고 있는 지식 체계 전체의 구성에 관한 문제이다. 당위적인 옳음의 문제는 논리적인 순서에 의해 도출되는 공식theorem이라기 보다는 그것이 있다라고 생각하는 공리axiom의 문제이다. 즉, 옳고 그름의 문제는 그것이 주장되어지는 지식 체계 전체에서 결론적으로 도달될 수 있는 것인가의 문제보다는 그것이 기존의 지식체계가 전제하고 있는 다른 종류의 옳음에 대한 주장들과 충돌하는가의 문제에 더 중점을 기울여 검토되어야 한다. 즉, consistency의 문제가 우선하는 것이다.

한국사회가 전제하는 옳고 그름의 문제는 무엇이 있을까? 많은 다른 나라에서 그것들은 헌법의 형태로 선포되어 국가(정부, 혹은 정체政體)의 정체성을 대내외적으로 규정한다. 한국(적어도 남한)정부는 그것을 '민주공화'라는 이름으로 규정했다. 그것은 곧 국민들이 자신들의 뜻에 따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할 자유가 있다는 것이며 이를 대의적인 형태의 위임을 통해 공적인 형태로 책임지우고자 한다는 것으로 보는 것은 잘못된 해석인가? 이는 한국정부의 헌법의 가장 전면에 있는 선언이며, 이것은 그 어떤 다른 논리성에 구애받지 않는 독립적인 공리로서 우선하는 것이다. 만약 그러한 공리에서 도출된 공식이 공리와 배치된다면 그것은 공식이 잘못 도출된 데에서 나오는 문제이지 공리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한 옳고 그름을 문제삼기 위해서는 다른 공리들과의 충돌의 문제를 살펴야하지 공리과 공식간의 서열을 논할 것은 아니다.

국민에게 헌법으로 보장된 언론 집회의 자유를 향유하고 대의적 형태로 맡겨진 그들의 권력을 회수하고자 하는 것은 국민에게 당연하게 보장된 권리이다. 이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고자 한다면 내세워야 할 것은 그에 상응하는 다른 옳음들일 것이다. 과연 그들은 그러한 옳음의 문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가? 높은 학력을 보유하고는 아직도 그러한 서열의 문제를 혼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심지어는 국민이 그러한 서열의 문제에서 무엇이 우선하는지도 모를 만큼 무지하다고 생각하고 그들의 착각이 먹혀들어가기를 바라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그만두었으면 한다. 대한민국의 도덕교육에 대해 슬퍼지려 하기전에.
2008/06/30 23:03 2008/06/30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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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

손가락 2008/05/18 08:24
 내가 공부를 시작한 이유는 단순하다. 그냥 재미있고 궁금하고, 삶에서 탐구를 통한 진리를 찾지않는다면 그것은 삶에 대한 비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때문에 나는 공부를 함에 있어 바람부는 것에 흔들리지 않고 비록 상아탑이라고 할 지라도 그 안에서 추구해야 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느날인가에는 그러한 공부가 사람들에게 삶의 지혜를 던져 줄 수 있는 하나의 메시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나름의 낙관론도 가지고 있다. 그것이 불의에 맞서 싸우는 응당 지켜야 할 인간의 가치가 되든, 사람들의 생활을 좀 더 편하게 해주는 일상 속의 원리가 되든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최대한의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자 또한 인간이므로 그의 시대를 완전히 초월할 수는 없음을 느끼고 있기에.

하지만 시국을 보면 이런 말도 무색해진다. 적어도 학자라면 그의 배움을 다른 사람들의 것을 빼앗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범행도구로는 쓰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닌가?

언젠가 승모형이 나에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절대 어용학자는 되지 말라"고 했다. 그때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어용이라는 말을 쓰기엔 내가 배운것이 너무 없었고 나 자신도 그런 것에 휩쓸리리라고는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배움은 그런 것과는 다소 무관하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어용(御用)학문'이란 이런 것이다 라는 것을 너무나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사람들이 있기때문이다.
2008/05/18 08:24 2008/05/18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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