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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과 영성

손가락 2006/10/30 00:01
 
가끔씩 신을 믿는 친구들과 만날 일이 있는데, 또 그런 와중에 그런 친구들과 식사를 같이 해야할 일이 생긴다. 식사를 앞에 놓고 기도를 하는 시간에 나는 잠시 머뭇 머뭇 거리고는 했었다. 딱히 신을 믿는 것도 아니고, 감사해야 한다면 한도 끝도 없이 감사해야 하건만 모든 감사의 연유를 신에게만 돌리는 것도 조금 말이 안된다고 생각해서 그냥 식사거리를 '깨작거리면서' 그들을 기다려주곤 한다.

그 외에도 신을 믿는 친구들과 만날때 참 복잡해지는 상황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그리고 신을 믿는 친구들 중에서도 역시나 상당히 넓은 스펙트럼이 존재해서 상황에 대한 반응도 조금씩 다르다. 대표적인 경우가 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내려오는 길에 서있는 피켓든 아주머니에 대한 반응. 보통 그 아주머니는 "예-수 믿고 구-원 받으세요"라고 느릿하고 긴 어조로 말을 한다. 그리고 그 피켓에 여러가지 성경구절이 써 있다. 신학을 공부하는 한 친구는 "저런 구절 없어"라고 단호하게 말을 한다. 어떤 친구는 남 일이 아니라는 듯이 나를 쳐다본다. 왠지 모르게 나를 끌고 교회로 가고 싶은 모양이다. 어떤 친구는 그냥 아무말 없이 무시하고 지나간다. 사실 제일 많은 경우는 세 번째의 경우.

언젠가 신을 믿는 친구와 한 번 신을 믿고 안 믿고에 대해 심각하게 논의를 한 적이 있다. 그 친구는 내가 신을 믿지 않는 이유를 의아해하면서 나를 필사적으로 설득했다. 그는 나에게 온갖 성경 구절을 인용해서 협박과 회유를 반복했지만 불행하게도 나도 성경을 n번 정도 넘게 읽은 사람인지라 (어렸을 때부터 강제교육을 받아온지라. 심지어는 두살 반에 한글을 떼고 읽기 시작한 책이 성경이었다는 -_-;) 누가 한 마디 하면 대략 무슨 구절인지 정도는 다 아는지라, 다행스럽게도(!) 회유에 넘어가지 않았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내가 그 친구의 가슴에 남을 상처(?)를 주고서 절교 가까이 되어버리게 되었다. 그때 한 말이 무엇이었는고 하니 "신은 인류 최악의 발명품"이라는 말이었다. 사실 지금도 그다지 생각은 바뀌지 않았지만, 그 친구의 신념에 그렇게 상처를 주어야 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여전히 그래도 진실은 진실이니까 하는 마음도 든다.

개인적으로 왜 신을 믿지 않는가라고 묻는다면 그에 대한 대답은 오직 한 가지 뿐이다.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꼭 한국 남자이기 때문에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에게 자존심이라는 것은 나의 존재감 전체를 감싸고 있는 큰 틀인 것 같다. 삶과 행동과 의식과 판단의 모든 구심이라고나 할까.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것, 스스로를 믿어야 하는 자기 자신의 문제를 신이라는 '다른' 존재를 통해서 기원하고 해결하려 한다는 것은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믿기만 하면 구원이라는 식으로 전도를 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어이가 없어지기도 하고. 이는 곧 자기 자신의 판단이나 결정, 혹은 그 밖의 모든 것들로 인한 괴로움과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도피처에  불과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인간이 모든 일을 예측할 수 없는 이유는 신의 뜻에 의해 세상이 조종되기 때문이 아니라, 수많은 인간들이 제각기의 의도성 아래에서 독립적인 행동을 하기에 빚어지는 '복잡함'에서 비롯된다고 나는 본다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자신의 의미를 지킬 수 없다면, 그것보다 더 안타까운 일이 있을까.
2006/10/30 00:01 2006/10/30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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