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iction we live
손가락 2007/01/05 01:42
어렸을 적부터 나는 이런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세상이 '존재'하는 세상일까? 도대체 살아있다는 건 뭔가? 나는 내가 무언가를 만지고 느끼고 생각하고, 내가 원하는 말을 입으로 할 수 있다는 사실들이 모두 너무나 신기했다. (물론 지금도 신기하다) 다른 사람들이 길거리를 지나가고, 공기가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언가가 보이지 않는 것이 주위에서 둥실거리고 떠다닌다는 사실이 사실인지 정말로 궁금했다. 그래서 내가 만지는 이 감각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생긴 감각일까, 혹은 내가 생각하는 게 다른사람에게 읽혀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오만가지 상상을 하면서 지금까지 세상을 살고 있다.
나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사는 줄 알았는데 중 3때 <The Matrix>라는 영화를 보고서 나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사는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그 전까지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반드시 영화식 표현을 빌리자면 '빨간약'을 먹고 세상을 구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왔다. 그런데 점점 자라면서 보니까 나한테 주어지는 것은 빨간약과 파란약의 이원적인 (binary한) 선택지가 아니라 무색부터 검은색까지 uncountable한 개수의 선택지였다.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그렇게 단순하게 결정을 내릴 수 있는게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다못해 수학 시험을 볼 때에도 우스갯소리로 답은 1아니면 0이라고 하지만 정말 uncountable한 답의 개수가 존재하지 않은가.기타를 한 번 칠때에도 스무개의 플랫 중에 조합하여 만들 수 있는 음의 수는 역시나 uncountable. 도대체 뭐가 내가 원하는 선택지이고 뭐가 세상을 구하는 선택지인지조차도 아리송하다. 심지어는 내가 선택한 선택지조차도 내가 그것을 선택했었는지조차도 알 수 없게 되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내 인생의 목표의 궁극점이 바로 세계의 존재성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거창하게 말할 수도 있지만 결국 궁금한 건 '정말 내가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하는 데에 대한 해답이다. 살아있는 것 같기는 하다. 맞으면 아프고 술 마시면 어질거리고 옆에서 노숙자들이 담배를 피워대면 켁켁거리면서 헤멘다. 다른 사람이 싫은 소리를 하면 성질내고, 좋아하는 사람이 눈길 한 번 안주면 그날 기분 우울하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는 하는데 도대체 이게 진짜일까 하는 의문이 계속 든다. 누가 이 세상을 만들었을까,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하는 식의 문제들은 일단 '세상이 있다고 치자'는 것을 전제로 시작하는 질문들이다. 정말 쓸데없는 시간 낭비라고 말들을 하지만 어쩐지 그런 생각이 든다. 정말로 이 세상이 존재하는 것일까 하는.
